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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오신 날?

by 초보 글쟁이

매일 같은 모습, 같은 말씀, 같은 행동을 하던

어르신이 가끔씩 다른 행동을 하시는 날이 있다.

갑자기 존댓말을 하시거나,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거나,

음력 날짜를 물어볼 때, 특정 옷이나 신발이 있는지를

물어보거나 특히 우리들 보고 언제 집에 가느냐고

물을 때면 어떤 선생님은 그분이 오셨다고 하시고

어떤 선생님은 그분이 가셨다고 하신다.


그러면 그날은 삐뽀 삐뽀 비상인 것이다.

그 어르신이 내 담당방일 때는 예의 주시해야 하고

또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와상 어르신이라면 집으로 가신다고 침대에서

내려오시려 하고 걷는 어르신이라면 모든 출입문을

잘 살펴야 한다.

7호 방 어르신이 물리치료가시는 다른 층 어르신을 몰래

따라가려다 탈출(?)에 실패한 적이 있었고,

다른 층에서 어르신 한분이 탈출에 성공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서 어르신을 빨리 찾게 되었지만,

버스라도 타시고 멀리 가셨으면 어쩌나 아직도 아찔하다.

밖으로 나가려면 몇 개의 문을 거쳐야 하는데

어떻게 나가셨는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 잠금장치가 더 생겨서 우리까지도 출입하기가

번거로워졌다.

그분이 오실 때면 어르신들은 더 이상 치매 어르신이

아니신 것이다.

낮동안 혹시나 어르신이 그분이 오신 것 같다?

그날 이브닝이나 나이트 근무 선생님들은 힘든 날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항상 조용하게 침대에서만 계시면서

말씀도 잘 하지 않으시던 어르신이 나이트 근무 때

출근해 보니 휠체어를 타고 계셔서 의아해했는데,

그날 밤새도록 집에 가셔야 된다고 하시고,

장사를 하셨던 분인지 팔 물건을 가지러 가야 된다고

우리에게 너무 한다고 얼마나 애걸을 하시는지

정말 집에 보내 드리고 싶었다.

그런 날은 정말 어르신께 너무나 죄송했다.

낮이라면 보호자와 통화하시면 덜 하실 텐데

밤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어르신도 우리도 같이

힘들 뿐이다.

어르신들이 온전한 정신이 되시면 좋아해야 되는데

겁부터 나니 이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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