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하루에 거짓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요양보호사들이 아닐까 싶다.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요양보호사는 없을 것이다. 아니 없다.
그 거짓말의 대상자는 물론 요양원의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을 상대로 우리는 어떤 거짓말을 하는 걸까?
소설처럼 어르신의 재산을 빼돌리는 걸까?
아니면 식사를 드리지도 않고 드렸다고 하는 거?
혹은 어르신들의 간식을 우리가 숨겨놓고 빼돌리는 걸까?
요양보호사는 어떤 거짓말들을 할까?
1.
한 어르신이 아침식사 후 상두대에서 옷을 꺼내 정리를 하고
계신다. 이유를 물어보니 오늘 집에 가시는 날이란다.
"어르신 오늘 집에 가세요? 좋으시겠어요"
"응, 이제 가야지 너무 오래 있었어"
"그래서 지금 옷 싸고 계신 거예요?"
"내 옷이니까 갖고 가야지"
"어르신 옷이니까 갖고 가셔야 되는 건 맞는데요
들고 가시기엔 무겁잖아요 우리가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아냐 아냐 내가 들고 갈 거야 잃어버리면 안 되잖아"
(똑똑도 하시지)
"들고 가시기엔 너무 많아요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기어코 빈 기저귀 박스를 갖다가 어르신 옷을 차곡차곡
챙기고 겉에 매직으로 어르신 성함을 크게 써 드리면
그제야 안심이 되신 듯 옷에 관심이 없어지신다.
"자 이제 아들 올 때까지 우리 TV 보면서 기다려요"
어르신을 모시고 나가면 다른 선생님은 상두대에 다시
옷을 정리한다.
보내지도 않을 택배, 오지도 않을 아들,
그렇게 우린 또 거짓말을 했다.
2.
촌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어르신이 닭 모이도 줘야 되고
고추 모종도 심어야 된다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집에 가시겠다고 오전 내내 고집을 부리신다.
걷지도 못하시고, 제대로 앉아계시지도 못하시는 어르신이
본인의 몸보다 고추랑 닭 걱정을 하셨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선임 선생님께 도움을 구했다.
그 선생님은 어르신의 말씀을 듣더니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사람 보냈어요
닭 모이도 주고, 고추 모종도 심으라고 사람 보냈으니까
걱정 마세요"
"내가 가야지 뭘 알고 해?"
"아유, 우리가 그런 것도 모를까 봐 그래요? 잘 아는 사람
보냈으니까 잘하고 올 거예요"
"뭐가 어딨는 줄도 모르면서... 내가 가야 돼"
"기다려보세요 못했다고 하면 그때 어르신이 가시면
되잖아요"
그래도 어르신은 가셔야 된단다.
선임선생님은 나보고 할 일 하라신다.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잠시 후 그 선생님은 이제 막 오후에 출근한 선생님 팔을
잡아끌었다. 영문도 모른 체 그 선생님은 1번 방으로
끌려가셨다.
"어르신 왔어요 지금 이 선생님이 고추 모종 심고
닭 모이도 주고 왔데요 그렇죠 선생님?"
"예? 아, 어르신 저 기다렸어요? 오늘 어르신 집에 가서
고추 심고 닭들 밥 주고 지금 왔어요"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그런 흔한 싸인도 없이
선생님들은 죽이 잘 맞았다.
"고추 모종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잘 찾아서 심었고?"
"예, 그 하우스에 있는 거 심으면 되잖아요?
닭 모이는 닭장옆에 있는 창고에 꺼 줬고요"
"아이고, 그거 아니다 내가 약 섞어 논거 있는데
그거 줘야 된다"
"어르신, 그건 지난번에 줬잖아요 그때 어르신이
약 줘야 된다고 해서 그건 벌써 다 먹고 그거 옆에 있는 거
주라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저도 그때 들었어요"
"그랬나? 그러면 닭들 괘안터나?"
"예, 괜찮던데요? 어르신 아드님하고 같이 갔으니까
나중에 전화 오면 물어보세요"
"닭 모이 줬으면 됐다. 내가 여기 있어서 굶어 죽는가 했지"
"저 일하고 오느라고 힘드니까 좀 쉬고 올께요
어르신도 쉬세요"
어르신은 고생했다며 고마워하셨고,
그제야 맘이 놓이신 듯 누우셨다.
방에서 나오는 선생님들에게 나는 말했다.
"이런, 사기꾼들!"
"사기꾼이라니? 우린 어르신을 속여서 이득을 취한 게
없는데? 단지 선의의 거짓말로 어르신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린 거뿐이지"
와중에 똑 부러진 설명까지?
"그런데 고추모종이 하우스에 있고 닭모이가 창고에 있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가 여기서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농사를 지었는 줄
알아? 물론 상상으로 짓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농사꾼
다 된 거지 또 어르신이 닭모이 주러 가신다고 하면 주고
왔다고 아니면 조금 있다 주러 간다고 해"
그러나, 항상 고추모종과 닭 모이는 아니었다.
때마다 고구마, 감자, 배추등 농작물이 다양해졌고
어떤 땐 소죽도 끓여야 한다.
소죽 같은 건 진작에 안 끓였을 텐데 어르신은 얼마나
오래전 과거 속에 계시는 걸까?
3.
간혹 요양원이 병원인줄 아는 어르신이 계신다.
며칠만 있으면 집에 가실 줄 아신다.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어요?"
"다섯 밤만 주무시면 갈 수 있어요"
다음날에도 다섯 밤, 그다음 날에도 다섯 밤이다.
그런데 왜 맨날 다섯 밤이냐고 묻지 않으신다.
절대 다섯 밤을 넘지 않아야 한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밤이라야 한다.
그런데 꼽는 그 손가락이 하나를 넘겨본 적이 없다
4.
우리 모르게 왔을 리 없는 보호자가 왔다고 하신다.
우리가 없을 때 보호자가 왔는데 지금 어디 있냐고 하신다.
또는 집에 손님이 오셨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본인이 가서 손님 대접을 해야 된다고 하신다.
보호자가 왔다는 날은 원장님, 또는 팀장님과 상담 중이라고
한다. 어르신이 집에 가실 수 있도록 의논한다고 한다.
너무나 얌전히 기다리신다. 그리고 잊으신다.
손님이 오셨다는 날은 어르신이 타고 갈 택시를 불렀다거나,
옷 갈아입고 가셔야 된다면서 옷을 찾는 척하거나,
항상 하는 말, 보호자가 오고 있는 중이라고
기다리자고 한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3시에 온다던 보호자는
결국엔 차가 고장 나서 다음날 오기로 했다는 거짓말로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날 어르신은 보호자를 기다리지 않으셨다.
5.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본인은 정신도 온전하고 다른 사람과 달리 멍청하지도 않고
(자신보다 못하다 생각하면 멍청이라고 하신다.)
아픈 곳도 없지만 혼자 있는걸 자식들이 안 좋아해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시는 남자 어르신이 있다.
문제는 다른 어르신들에게 불쌍하다고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볼 때마다 말씀을 하시는 거다
인지가 또렷한 어르신이 들으면 화가 나는 내용이다.
보다 못한 어느 선생님이
"여기는 그런 분들이 오시는 곳이에요"
라고 한마디 했다
애초에 등급을 받지 않으면 올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데 난리가 났다.
본인을 바보 멍청이들하고 똑같이 취급했다고...
그날 어르신은 말짱한데 여기 오신 거라고
죄송하다고 우리가 용서를 빌었다.
제일 억울한 거짓말이었다.
우리의 거짓말은 정말 다양하다.
때로는 슬픈 거짓말도 있다.
일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을 말씀드릴 수 없을 때가 있고,
설명 자체를 못 알아들으시는 경우가 더 많고.
설명드려서 사실을 아신다 해도,
조용히 수긍하시는 어르신은 단 한분도 계시지 않는다.
우리의 거짓말은 어르신들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그리고 어르신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말씀을 하시고
본인이 맞다고 우기시고 고집을 부리셔도
우리는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게 아닌,
어떻게든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에,
어르신과 우리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오늘도 합리화해 본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렇게 어르신들과 라포(친밀감, 신뢰)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