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by 초보 글쟁이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말이란다.

아마도 노인이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삶의 지혜는

도서관에 보관된 자료처럼 방대하고 소중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종종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의 평균 연령이 50~60대다 보니,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역시 경험과 연륜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치매 어르신이 계시는 이곳에서도

도서관처럼 많은 삶의 지혜들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입원, 수술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목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일하는 곳이 요양원이다 보니 어르신들께 폐가 될 수 있어

조심을 하고 항상 마스크를 착용했는데도

일주일 정도를 고생했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지만,

기침을 하고 목이 아프니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귀가 어두운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고, 방금 물어보신 걸

잊으시고 자꾸 물어보셔서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그러다 보니 내 목소리는 조금씩 더 남성화가 되어갔다.


몇몇 어르신들이 기침을 하는 나를 보고 본인들만 알고

계시는 노하우들을 알려주셨는데,

세상에 그렇게 많은 민간요법이 있는 줄 몰랐다.

목에 파를 묶고 자라고 하신 어르신도 계셨다.

그중에 정말 대단한 걸 알게 되었는데,

민간요법이라기보다는 진짜 삶의 지혜 같은 거였다.


"감기 걸렸나 보네? 수술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조심했어야지"

7번 방 구 00 어르신이 기침을 하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어르신도 과거에 나와 같은 수술을 하셨단다. 그래서인지

항상 수술한 데는 괜찮냐고 물어봐주셨다.

구 00 어르신은 우리 요양원과 재밌는 인연이 있는

분이셨다.

우리 요양원이 처음 이곳에 지어질 때 앞장서서

'요양원 건설 반대!!'를 외치셨단다.

그런데 그때 반대했던 곳에 오시게 되셨으니...

"내가 그때 왜 반대했나 몰라 이렇게 좋은 선생들도

있는데..."라며 가끔씩 수줍게 웃으신다.


"글쎄 말이에요 요 며칠 추워서 감기 걸렸나 봐요"

"목에다가 수건 두르고, 마스크 하고 자. 뜨신물도 많이 묵고"

"마스크는 하고 자는데 일어나 보면 없어요 자다가 아마

답답해서 빼나 봐요"

"답답해도 하고 자야지 수건도 빨아서 널어놓고 자고"

"가습기 있어서 괜찮아요"

"것보다 수건이 좋다 수건 몇 개 빨아서 널어놔!

그리고 마스크 답답하면 좋은 방법이 있다."

"네 나중에 들을게요 지금은 바빠요"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 싶어 일을 핑계로 그 자리를

피했는데, 어르신을 나를 볼 때마다 좋은 방법이 있다고

기침을 할 때마다

"것 봐라 방법 있다니깐" 하시길래

듣고 이 지루한 공방을 끝내자 싶어 어르신께 방법을

물어봤다.

"종이 박스 있쟈? 라면 박스 같은 거 그게 딱 좋다"


이 무슨 멍멍이가 야옹하는 소리를 하시나 싶었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하는 거냐며 나중에 해보겠다며

그냥 그렇게 넘겨버렸다.

그런데 그날밤, 기침이 더 심해지고 가슴이며, 배까지

아파지니 어르신이 알려주신 방법을 해보기로 했다.


종이박스로 얼굴을 덮어라


잘 때 박스로 얼굴을 덮으라는 것이었다.

박스 한 면을 뚫어서 그 안에 얼굴을 넣고 자면 된다는

것이다.

"웃풍이 있으면 기침이 나니까 그걸 막아야 돼"

안 그래도 잘 때 어디선가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것 같은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자니 답답하고 마스크는 쓰고 자면

아침까지 내 얼굴에 잘 붙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번 해본 거였는데...

정말 이런 방법이 있다니... 구 00 어르신 따봉!입니다.


처음에 박스 한 면만 뚫어서 머리를 넣었더니 움직일 때마다

박스도 같이 움직이고 어딘가 불편해서 3면과 윗부분만

남기고 바닥 부분을 없앴다. 그런데 목부분이 휑해서 수건을

걸쳤더니, 어쩜 이렇게 아늑할 수가....

그렇게 누워있다가 갑자기 머리 위로 전구가 팟!!!!!

켜졌다.

기침을 하면서 쪼그려 앉아 박스 윗부분을 칼로 정성껏

도려냈다. 그리고 핸드폰을 케이스에 넣고 박스에 정성껏

테이프로 고정했다.

그리고 그 위에 수건을 길게 걸쳐서 목까지 늘어뜨리면.....

누워서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아도 되는 박스 핸드폰

거치대가 생긴 것이다.

오~ 나도 나름 연륜이 있는가 보다

박스 얼굴 덮개(?)는 이불처럼 답답하지도 않았고,

마스크처럼 사라지지도 않았다.

(몸부림이 심하면 망가질 수도 있지만...)


내 모습을 본 아들이

"엄마 뭐 해? 왜 침대 위에서 노숙을 하고 있어?"라고

놀리더니 엊그제 나이트 근무 후 퇴근하고 집에 오니

박스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아들을 보게 되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말이 많으면 '꼰대'라고

한다. 우리 아들 역시 내가 말하면 '잔소리'라고 한다.

그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았기에 알려주려 하는데

듣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아직까지 우리 엄마의 소리가 잔소리로 들리니까

말이다.


얼마 전 이런 글을 봤다.

어렸을 땐 엄마가 세상에서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고

사춘기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땐 엄마에게 물어봐야 했고,

나이가 드니 이제는 물어볼 엄마가 없다.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사라지기 전에 많은 걸 배워야 되겠고, 우리도 자식들에게

알려줘야 되지 않을까 싶다.

잔소리하지 말라고, 꼰대라고 하면


어느 노래 가사처럼

"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단다!"라고 말해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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