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막내아들만 걱정하신 어르신

by 초보 글쟁이

우리 요양원 창밖 정원에 성탄절을 알리는 눈사람과

아기자기한 성탄 장식이 만들어지고 나무를 감싼

전구의 불빛들이 반짝이면 문득 생각나는 어르신이

한분 계신다.

침상 위에서 옆으로 다소곳이 앉아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를 보고 계셨던 자그마한 체구의 오 00 어르신.

지금은 퇴소하셔서 소식은 알 수 없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실 거라고 믿고 싶은 어르신이다.

정말 외할머니 같은 어르신이었다

주무시다가 우리가 어르신들을 살피러 가는 기척에

잠이 깨시면 본인의 침대 한편을 토닥이며

"아직까지 안 자면 우야노? 여 자라"고 하시고

식사 때마다 몇 수저 드시다가 밥도 못 먹는

우리가 안쓰러운지 자신의 수저를 우리에게

내미시며 같이 먹자고 하셨다.


하루는 항상 복도 문밖만 보고 계시는 게 안타까워

"어르신 창밖을 보세요 눈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어르신이 몸을 돌려 창밖을 볼 수 있도록

해드렸다.

어르신이 창밖 정원 눈사람을 보시고

"우야꼬, 우야꼬 눈 왔나?" 하시길래

"예, 눈이 왔어요 그래서 눈 사람 만들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아이든 어른이든 눈은 다 좋아할 테니 말이다.

"우야꼬, 우야꼬 눈이 많이 왔네 우야꼬"


그날 어르신은 가만히 앉아계시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창밖을 자주 내다보셨다. 그 모습을 보고 그렇게도

좋으실까? 싶어 내심 뿌듯했다.

저녁이 되어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는데

또 창밖을 보시길래 '그렇게도 눈사람이 좋으시냐?'

여쭤보려 어르신 곁으로 갔더니

"우야꼬, 눈사람이 안 녹는다 선생들 집에 가야 되는데

눈사람이 안 녹는다 우야꼬~ 눈 많이 와서 추운갑다 우야꼬"

하시는 거다.

눈사람이 좋아서 보신게 아니라 우리가 집에 가야 되는데

눈사람이 안 녹을정도로 춥겠다고 걱정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눈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여름에도 녹지

않을 텐데 그러면 우리 어르신이 계속 걱정하실 텐데...

"어르신 저 눈사람은 안 녹아요 가짜 눈사람이라서 안 녹아요

그리고 눈 안 왔어요 춥지도 않고요"

어르신은 무슨 그런 눈사람이 있냐고 의아해하셨지만

그런 게 있다고 했더니 별 희한한 게 다 있다고 웃으셨다.

눈 많이 와서 우리 집에 못 갈까 봐 하루 종일 걱정하신

어르신이었다.

그런 어르신께서 자주 하신 말이 있다.

막내아들이 결혼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막내아들을 걱정하셨다. 본 지도 오래되었고

결혼 얘기할까 봐 안 오는 것 같다고...


언젠가 어르신과 함께 생활관 복도를 걷고 소파에 앉아

쉬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어르신이 또 막내아들 걱정을

하니 옆에 있던 장난기 많은 신 00 선생님이

"어르신, 저는 어때요? 제가 어르신 며느리할까요?"

라고 어르신께 물었다. 얼마 전 할머니가 된 선생님이셨다.

"응?" 못 들은 척하신다.

"제가 어르신 며느리 할까요? 어르신 아들이랑 결혼할까요?"

"응, 며느리 봐라"

"아니요 제가 어르신 며느리 해도 되냐고요"

"며느리 있다고?"

"아니요 제가 어르신 며느..."

"그만해요 선생님, 선생님이 며느리감으로

싫다고 하시는 거잖아요"

"어르신도 나이 든 며느리는 싫다는 거지"

갑자기 안 들리는 척, 못 알아들으시는 척하시는

어르신을 보고 우리가 웃었다.

"어르신 저는 어때요? 저는 이 선생님보다 젊어요"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이 물었다. 거짓말이다.

살 어리면서

"이쁘지"

"어르신 아들이랑 결혼해도 돼요?"

"결혼해라"

"진짜요? 제가 어르신 아들이랑 결혼해도 돼요?"

"결혼해야지 우리 아들도 선생처럼 빨리 결혼해야 될 건데."

그렇게 우리는 어르신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감들이었고

그날 우리끼리 재밌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간호사님이

"그 어르신 아드님,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못 오시는 거예요

어르신은 몰라요"

침묵이 흘렀다. 아마도 선생님들도 모르셨나 보다

하긴 우리가 그런 거까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뒤로 어르신이 막내아들 걱정을 할 때마다

"어르신 꼭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이미 결혼했다고 하면 어르신이 서운해하실까 봐

꼭 좋은 사람 만나서 조만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 건강이 좋아지셔서 퇴소하셨지만

아직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는

어르신이다.

엊그제 창밖 눈사람을 보고

"오 00 어르신 잘 지내고 계시겠죠? 참 좋은 분이셨는데..."

옆에 있던 선생님이

"모르지, 어쩌면 막내아들 만나셨는지도 모르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스럽게 째려보니

"그게 더 좋을 수도 있어 아니면 또 어딘가 요양원에

계실 테니..."

그런가도 싶었다.

"그나저나 오 00 어르신 자리를 잘 못 팔고 가셨어"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보니 예전 어르신 침대를 보고 계신

선생님.

그곳엔 오 00 어르신과는 전혀 다른, 우리를 날마다

힘들게 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그런데 왜 올해는 눈사람이 멀리 있고 길 가를 보고

있을까요? 작년에는 이쪽을 쳐다봐서 어르신들도

보고 좋았는데 말이죠 혹시 오 00 어르신처럼 우리

걱정할까 봐 그랬을까요?"

아마도 F일 것 같은 선생님이 물었다.

"만드는 사람 마음이지"

T일 것 같은 선생님이 대답했다.



00 어르신, 잘 지내고 계시나요?

혹시 아들 만나셨어요?

어디에 계시든 이제 다른 사람 걱정은 하지 마시고

어르신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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