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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에게 환경변화는 큰 스트레스다(2)

by 초보 글쟁이

어르신들에게 급격한 환경 변화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크게 느낀 일이 있었다.

작년 가을쯤 이○○어르신이 입소하셨다.

그때도 어르신이 입소하셨다는 공지만 받고

그날이 나이트 근무였었다.

출근하면서 자연스레 1, 2호 방을 지나치게 되는데

우린 습관적으로 그 방을 살펴본다.

아직 근무시작은 되지는 않았지만

어르신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우리들의 일종의 직업병적인 습관이다.


그런데 새로 입소하신 어르신의 침대 머리맡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불은 불룩한데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혹 답답하실까 싶어 이불을 조심스레 들쳐보니

허리가 심하게 굽어있으셨다.

그러니 똑바로 누울 수 없어 옆으로 누워계셨으니

머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주무시는 것을 확인한 후에

공지노트에 어르신에 대해 정리되어 있는 것을

읽어보았다.


인지가 양호하시며, 등이 심하게 굽어있어

화장실 이용 시 동행 필수이며, 좌변기 이용 시 앞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워커바로 지지할 수 있도록 권해드리고,

간식 요구 시 갖다 드리기 등

어르신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읽어보았다.

첫날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그날 잠도 잘 주무시고 아침에 식사도 잘하셨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셔서 처음 뵙기에 반갑게 인사를

드렸으나 대꾸도 없으시고, 모른 척하시길래

낯설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날 퇴근을 준비하며, 새로 입소하신 어르신이

참 얌전한 분이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그 생각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 입소하신 어르신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우리에게 '괴팍하고 고집까지 세고 거기다 말도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고약한 어르신(또는 노인네) 일뿐이었다.

다만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그 방 담당자가 되었을 때는 다들 힘들어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다행이라면 아직 신입인 내가 그 방 담당이 되지 않는걸

감사했다.

보통 2개의 생활실을 한 명 또는 두 명의 요양보호사가

담당하게 되는데, 1호 방은 남자 어르신들 방이고,

2호 방은 피딩어르신들, 콧줄이나 위루관으로 영양분을

섭취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신 방이다. 신입들이 혼자

맡기에는 사실 힘든 방이다.

그러나 계속 신입일 수는 없는 법, 어느새 나도 가끔씩

선임선생님들과 그 방 담당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 어르신의 억지스러운 요구와 막무가내인 말을

온전히 하루 종일 감당해야 했다.

1,2호 방 담당일 때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억지를 부리시는 것도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

싶은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어르신이 보호자가 보낸 간식을 본인의 상두대에 두시길

원하셔서 그렇게 해드렸는데, 주무시다가도 누워서 간식을

섭취하시고(혹시나 기도로 흡입될 경우가 있어 꼭 일어나서

드시도록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많은 양을 드셔서 보호자와 상담 끝에

정해진 시간에 드리기로 했는데, 그때부터 우리가 본인의

간식을 훔쳐갔다고 하셨고, 간식을 갖고 오라고 화를 내시고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으시고 고집을 부리셨다.

옷도 한 가지 옷만 고집하시고 세탁을 해야 된다고 해도

거부하시고, 식사시간에도 식사를 안 하시고

말도 되는 말씀을 하시고, 모든 일에 짜증을 내시고,

우리가 어르신이라 불러도 대꾸조차 하지 않으시는

청개구리 어르신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르신이 열심히 하시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성경책 읽기'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을 자는 그 순간까지 성경책을

놓지 않으셨다.

입소하신 그날부터 계속 그 성경책은 어르신과

동행(?)했다.

성경책을 읽으신다고 프로그램 참석도 안 하시고,

물리치료도, 산책도 안 가셔서 워커바에 바구니를 달고

성경책을 넣을 수 있도록 해드렸더니 그때부터 프로그램

참석하실 때도, 물리치료를 가실 때도, 급기야 화장실까지도

그 성경책은 어르신과 같이 했다.

그 외에는 항상 침대에서 성경책을 읽으셨다.


"어르신 어제는 신명기 읽으시더니 오늘은 에스더

읽으세요?

굉장히 빨리 읽으시네요"

"........."

"에스더는 무슨 내용이에요?"

"........."

"저도 교회 다녀요 에스더가 무슨 내용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

"........."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나의 말은 허공에

날릴 뿐이었다.

다음날에 갔더니 신약을 읽고 계셨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놀랄 것이다. 읽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이라는 걸...


"어르신 굉장하세요 벌써 신약을 읽으시는 거예요?"

".........."

"이러다가 어르신 100독은 넘게 하시겠어요"

(1독=구약 창세기부터 신약 요한계시록까지 한번 읽는 것)

".........."

"저는 이때까지 1독도 못했는데.."

"........."


또 어느 날은

"어르신 밖에 눈이 와요"

"........."

눈이 오면 아이나 어른이나 좋아하니 한 번쯤 쳐다보실 듯도

한데 아무 반응도 없으셨다.


"어르신 메리 크리스마스요! 예수님 생일이에요"

"........"


'나 누구랑 대화를 하는 거니?'


아무리 말을 걸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너랑은 절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느낌이었다.

밤늦도록 성경책을 읽으셔서 같은 방 어르신들의 불만이

커져 보호자가 개인 스탠드를 보내니, 어르신의 성경 읽기는

더욱 심해지셨다.

어르신은 철저하게 본인만의 울타리를 치셨고,

그곳에 아무도 가까이하길 바라지 않으셨다.

간식에 대한 불만도 점점 없어지셨고,

그와 동시에 우리와 유일하게 했던

"내 간식 내놔!"

"안 돼요! 조금 후에 드세요" 같은 대화도 없어졌다.


그런 어르신이 어느날부터 변하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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