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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에게 환경변화는 큰 스트레스다(1)

by 초보 글쟁이

어르신들에게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낯설고 두렵다.

갑자기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거나,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일 것이다.

나 역시 30여 년 동안 서울에서 살다가 대구로 왔을 때

아는 사람도 없고 사투리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데다가

성격도 그리 활달하지 못해

거의 2년 동안을 집에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원한적도 없는데, 낯선 곳에 있게 된다면

과연 어떨까?


그래서 새로운 어르신이 입소를 하시면 한동안은

잘 살펴야 한다.

그 어르신의 성향도 잘 모르고 어떤 치매 증상이 있는지

모르니, 한동안 야간 근무자들은 긴장을 해야 한다.

밤이 되면 어르신들이 배회를 하기 때문이다.

일몰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어두워지면 갑자기

난폭해지거나 귀가본능이 살아난다.

특히, 걷는 어르신은 더 조심해야 한다.

김○○ 어르신이 새로 입소하셨을 때다.

낮에 새로운 어르신이 입소하셨다는 공지가 떴다.

그날은 나이트 근무였다.

출근하자마자 인계내용을 확인하고 어르신에 대해

정리되어 있는 것을 읽고 이전 교대자에게

어르신에 상태에 대해 물어본다.

다행히 낮동안 생활실에서 운동도 하시고 다른 어르신과

잘 지내셨다고 하셨다. 다행이다 싶었다.

이전교대자가 퇴근을 하고 우리는 어르신들의 잠자리를

봐드리고 혹여 안 주무시는 어르신은 없는지 살피고

새로 입소하신 어르신께 이제 주무시자고 말씀드리니

이제 집에 가시겠다고 하신다.

큰일이다.


"어르신, 지금은 밖이 캄캄하니까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가세요"

"내 집에 가야지 여기서 어떻게 자?"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자녀분이 오실 거예요

그러면 그때 같이 가세요"

"올 사람 없어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집에 갈 거야"

농담이라 생각하셨는지 웃으시며 혼자 가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계속 집에 가는 것을 막으니

급기야 화를 내고 폭력적으로 변하셨다.

"왜 못 가게 하는데? 니들이 뭔데?"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라들었다.

함부로 손을 잡을 수도 없다. 멍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명은 일을 하고 한 명은 그 어르신을 따라다녀야 한다.

야간 근무라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수시로 라운딩을 돌아야 하고, 컴퓨터 작업도 있고,

다음날 양치컵과 앞치마 준비, 피딩 어르신들 식사 준비,

약 갖다 놓기, 그리고 와상 어르신들 기저귀도

봐드려야 하고, 걷는 어르신이 화장실을 갈 때 동행도

해야 하는데, 한 사람은 꼼짝없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그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김 00 어르신은

생활실 문이란 문은 다 흔들고 곳곳마다 돌아다니시며

출입구를 찾으셨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주무시고 계시는 어르신들에게까지 해코지를 하셨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계속 따라다니거나, 조용히 말을 걸어보거나, 주무시도록

권해보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한번 집에 간다는 마음이 들고, 더 이상 낯선 곳이

싫어지면 안정될 수가 없다.

늦은 밤이 되면 생활실에 불을 소등하고,

작은 전구 두세 개만 켜놓는다.

밖이 밝으면 어르신들이 주무시지 않기 때문이다.

한동안 소리를 지르며 배회하던 어르신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배회가 멈춘 것은 아니다.

계속 출입구를 찾으러 다니셨다.

그러다가 3호실에 들어가셨다가 화장실로 그리고 4호실로

다시 복도로 나오셔서 건너편 9호실로 들어가셔서

또 화장실로 그리고 10호실로, 또 복도로 나와서 3호실로

그리고 화장실로, 같은 자리를 자꾸만 맴도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팔을 잡으셨다.

"나 집에 보내줘 무서워, 나 집에 가고 싶어 제발"

어르신이 어린아이처럼 간절히 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르신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우리 층엔 총 10호실이 있는데,

서쪽으론 1호실부터 6호실까지 동쪽 맞은편엔 7호실부터

10호실까지 있다.

각 호실 사이엔 화장실이 있다. 거의 다 똑같은 구조이다.


그 어르신은 문이 있길래 3호실로 들어갔는데 깜깜하고,

마침 불이 켜져 있는 곳이 있길래 문을 열었더니,

화장실이었고, 맞은편에 문이 있어서 밖인가 싶어

열었더니 아까와 같은 곳이고,

밖을 나와서 앞방에 들어갔더니, 또 똑같은 곳이고,

밝은 곳 문을 열어보니, 화장실이 있고,

맞은편 문을 여니, 또 아까와 같은 곳이고...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보니 같은 곳이라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게다가 침대마다 어르신들이 주무시고 계시는데,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침대에 똑같은 이불을 덮고

곤히 미동도 없이 주무시는 어르신들이 산 사람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깜깜한 밤에 모르는 여자가 자기를 계속 따라다니고

문을 열 때마다 같은 곳이고,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다 죽은 사람 같고....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싶다.


처음 오시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개월이 넘도록

적응을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있다.

이제 우리와 또 다른 가족처럼 지내야 하기에

어르신들이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실 수 있도록

우리도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간혹, 보호자들이 거짓말로 어르신을 시설로 모셔온

경우에는 특히나 더 힘들다.


내가 입사 전이었는데

보호자가 어르신께 온천에 가자고 하고

시설로 모셔온 어르신이 계셨다고 한다.

몇 달 동안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셨단다.


내가 예전에 있었던 곳엔 단풍을 싫어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아들이 단풍구경 가자고 하고 버리고 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며칠 전부터 시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화도 해보고

적응기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어르신도 보호자도 요양보호사도

서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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