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햇살이 3호 방 창문가 곁,
침대에 길게 드리워지면 그 침대를 쓰시던
어르신이 문득 생각난다.
늦은 오후 그 방에 햇살을 가리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릴 때면
침대에 앉아 미소를 띠며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미소가 너무 예뻤다.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그 기분마저 좋은 기분으로 바꾸는 신비한 분이셨다.
지금은 다른 어르신이 그 침대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지금도 그 방 창가엔 그 어르신이 안경 너머로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다.
항상 일찍 일어나셔서 머리를 단정하게 빗으시고,
우리가 세안수건을 갖다 주면 꼼꼼히 닦으시고,
자신을 단정하게 하시는 분이셨다.
일요일마다 시설에서 드리는 주일예배에 참석하셨다.
안경을 끼고, 머리를 곱게 빗고, 상두대 서랍 속에서
성경책을 꺼내 휠체어에 탄 무릎 위에 곱게 놓으시고,
역시 미소 띤 얼굴로 '갔다 올게요' 말씀하시며 가시곤 하셨다.
9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어르신의 성함은
잊지 않고 있다.
품성이 고운 분이셨다.
굳이 표현하자면 예쁜 치매이신 분이셨다.
그런 어르신이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 때가 있었는데,
걷지 못하시는데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였다.
평소엔 얌전하시고 좋으신 분인데
요의나 변의가 느껴지실 땐 난폭해지셨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데 갈 수 없고,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의
용변은 어르신을 화나게 만들었다.
"어르신, 기저귀 해드렸으니까 소변보시면 저희가 치워드릴게요"
"여기서 어떻게 싸? 화장실에 가야지"
"다른 분들도 다 하세요 부끄러우시면 가려드릴게요"
"화장실에 갈 거야"
"어르신은 걸을 수가 없어요 여기다 하셔야 해요"
어르신의 손을 기저귀로 가져가 알려드려도 손을 뿌리치셨다.
"내가 왜 못 걸어? 나 걸을 수 있어"
위험한데 하루에도 몇 번씩 침대에서 내려오시려 하셨다.
넘어져서 낙상사고라도 날까 걱정이었다.
서 계시지도 못하는 어르신을 화장실로 모시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는 보다 못한 선생님이
"어르신 그러면 내려와 보세요 어르신이 걸어서 화장실
가세요"
그리고 어르신에게 세명의 선생님이 둘러섰다.
"그래 나 갈 수 있어 내가 화장실 갈 거야"
선생님들 세 명이서 양쪽에서 뒤에서 어르신 바지를
움켜잡았다.
간신히 침대를 잡고 서있는 어르신에게
"어르신이 걸어보세요 우리 손 놓습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이내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때의 그 어르신 얼굴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왜 이러지? 왜 걸을 수가 없지?'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게 얼굴에 훤히 쓰여있었다.
낙담하듯 침대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곤 애처롭게 돌아누우셨다.
그런데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어르신은 단기기억상실이었다.
방금 전 일을 항상 잊으셨다. 요의를 느낄 때마다 항상
그러시지도 않았다. 아마도 요의를 느끼시는 것도
잊으시는 것 같은데 같은 방 누군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면 그때부터 침대에서 내려오시려 하셨다.
얼마 전 걷는 어르신이 입소한 후 그러셨으니까...
자신이 걸을 수 없고 혼자 설 수도 없는 것을 항상 잊으셨다.
그럴 때마다 우린 세 명이서 붙잡고 침대에서 어르신을
일으켜야 했다.
평소엔 얌전한 분이셨는데, 화장실에 간다고 하실 때마다
어르신은 난폭해지셨다.
매일 그러시진 않으셨지만 가끔씩 우릴 힘들게 하셨다.
평소엔 '고마워요''수고 많아요''힘들죠?'라며
우리를 위로해 주셨던 분이시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한 어느 어르신에게서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다. 혹시나 싶어 그 방 어르신 모두
검사해 보니 그 어르신에게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바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며칠 후 아침 조회시간, 어르신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다들 너무 놀랬다.
정말 건강하셨던 분인데..
며칠 입원하시고 돌아오실 줄 알았다.
지금까지 여러 어르신과 이별을 했지만
그 어르신 별세는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직도 오후 햇살만 보면 그 어르신이 생각난다.
서○○ 어르신, 천국에 가셨죠?
그곳에서는 어르신 두 다리로 맘껏 걷고 뛰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