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혼자 떠난 쿠바 여행 일기
Hotel 도착 (Dec10,2016)
늦은 시간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는 중 어디선가 사람들의 이목이 느껴진다. 혼자 온 여행객은 많았겠지만 동양인 여자가 혼자 온 모습은 이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말 혼자 온것인지를 알고 싶다는 듯 내 주변을 훑어본다.
혼자 여행하려면 이런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져야 하고 담담해져야 한다.
뭔가 독특한 분위기의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벨보이의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다시는 못 찾아갈 것 같은 길고 긴 터널 같은 길을 지나 호텔방까지 왔다. 그때가 거의 9시쯤 되었고 저녁 뷔페가 10시까지 한다는 말에 가방만 던져 놓고 나왔다. 사람들에게 물어 복잡한 그 길들을 지나 겨우 뷔페홀을 찾을 수 있었는데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그런지 텅 빈자리가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음식은 여전히 넉넉해 보였다. 오랜만에 뷔페 음식을 보니 하루 종일 굶었던 식욕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보기 좋은 음식들을 신나게 담고 있는데 음식을 나눠주던 쿠반이 띄엄띄엄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다. "나 한국인이야"라고 하니깐 신기하다는 듯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인이래" 라며 이래저래 소문낸다. 그 이후로 뷔페홀에 갈 때마다 그들은 나를 마치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하이, 코리안!"
이라고 반갑게 불러줬다.
쿠바가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를 들었다만 맛있어 보이는 것과 달리 맛은 정말 그냥 그랬다. 욕심에 많이 담은 파스타는 먹을 만하지 않았고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어 눈치 보며 옆에 있던 웨이트리스에게 음식 남겨서 미안하다고 하고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내렸던 비는 그쳤고 산책이나 할 겸 주변을 거니는데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말을 건넸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깐 자기가 여기서 일한 지 오래되었는데 한국인과는 처음 얘기해 본다면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내가 저녁 근무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오늘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지금 저녁 10시까지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너무 놀라 하자, 자신은 여기 매니저라 남들보다 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곳은 혼자 있으면 심심할 수 있으니 새로운 사람들과 많이 얘기하고 재밌게 즐기고 가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다시 일하러 돌아갔다.
이 곳은 밤이어도 낮과 같은 분위기였다.
호텔밖에는 재즈 공연이 한창 펼쳐졌고 모든 주류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만큼 바 주변은 레게풍의 음악과 함께 사람들로 하루 종일 축제 분위기였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 (Dec 11, 2016)
"Hola"
부지런한 여행객들은 아침 일찍부터 조식을 마치고 바로 해변가로 가려는 모양이다.
나는 다음날 하바나로 떠날 차편을 예약 해 놔야 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로비로 가서 차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호텔 안에 여행사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보라고 한다. Havana로 차편만 해서 25 cuc에 예약을 했다. 내가 Viazul 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10 cuc이라고 했더니 그 버스를 예약하려면 직접 버스 정류장까지 가야 하는데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여기서 출발하는 이 차편이 더 나을 거라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출발해야 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차편 예약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내 고민 하나는 줄은 것이다.
투명할 정도로 맑고 푸른 바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이른 아침부터 비치타월을 들고 해변가로 향하는 분위기였다. 버스 예약을 마치고 나도 부리나케 준비하고 일광욕을 즐기러 나갔다. 나도 자리 좀 잡아 볼까 하고 이리저리 자리를 찾고 있는데 오전에 우연히 만났던 앳된 모습의 남자애가 불쑥 내가 잡은 자리로 껴든다. 나는 놀라서 "여기 너 자리였어? 미안."이랬더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너 혼자면 우리랑 같이 놀자. 혼자 놀면 심심하잖아.."이런다. 고맙지만 되써 난 나 혼자 이 여유를 즐기고 싶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고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문득문득 생각이 밀려왔지만, 고민은 잠시 미뤄두고 백지상태로 있고 싶었다. 이 곳에서 들리는 건 사람들의 목소리도 아닌, 자연이 만들어 바람과 파도 소리밖에 없었다. 내가 있던 현실의 세계는 시간에 쫓겨 사는 곳인데 이 곳은 모든 것이 멈춘 그런 마법 같은 곳 같았다.
낮잠도 자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3시간이 훌쩍 넘었다.
다들 점심시간이 되자 하나둘씩 곁에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내 주변은 텅 비어 버렸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조금 시시해 보이는 동물들의 애교 넘치는 공연을 보고 방에 돌아왔다.
분명 아침에 나갈 때만 해도 내 방 근처를 청소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5시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머무는 층의 청소를 다 끝내지 못한 모양새다. 나는 '와. 아직도 청소 중인 거야? '라는 생각으로 건너편 청소 중인 방 쪽을 쳐다봤는데, 순간 하우스메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흑인인 그녀는 어떤 고민도 없을 것 같은 여유롭고 밝은 미소로 나에게 인사를 날렸다.
방을 들어서자 침대 위의 이불로 만든 커다란 하트와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 이불 접기와 메모를 일일이 손수 남기기 때문에 유독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글씨체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지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시원시원하게 잘 갈겨쓴 영문체를 보니 그녀는 분명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보니 뭔가 '피식_'웃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었을 그녀의 모습이 상상되니 이 모든 게 기분 좋은 선물 같았다.
나는 이런 소소한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