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혼자 떠난 쿠바 여행
Centro Havana (Dec 12, 2016)
오후 2시 30분..
날씨 때문인지 그 전날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건지 피곤함이 몰려온다. 방안에서 뒹굴며 여유를 부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바나 첫 날을 허성 세월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잠시나마 택시 안에서 바라본 하바나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의 분위기를 가졌을 것이라 상상했었는데 잠시 내가 바라본 풍경은 뭔가 분주해 보이는 사람들과 도로 가득 자동차들.. 빈번하게 들리는 자동차 클락션 소리였다. 여태껏 상상해 왔던 그림과 다른 모습 그리고 오래된 건물들이 주는 낯선 분위기가 전에 없던 긴장감을 주었지만 이런 낯섦이 오히려 여행의 기대감과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처음 거리를 걸었을 때 나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소매치기를 당할 것 같은 생각에서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낡고 허름하게 변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주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우리는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것을 추구하는 21세기 지금 시대에 살고 있고 아쉽게도 옛것으로 치부되는 모든 것들은 지금 시대에 맞게 대부분 변해있다. 사실상 우리가 사는 곳에서 실제 과거의 모습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걷고 있는 이 곳은 도시 전체가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쿠바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지만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쿠바의 시대상이 어땠을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나무에 열매가 달린 것처럼 주렁주렁 걸려있는 알록달록한 빨래들이 내가 살던 어릴 적 모습인 것 같아 정겹게 느껴졌다.
길을 걸을 때마다 혼자 있는 나를 신기하게 보며 쿠반들이 말을 건다.
"중국인이야? 일본인이야?"
"둘 다 아닌데!"
그럼 그때서야 "아! 그럼 한국인!" _
신기하게 모든 쿠반들은 외국인에게 할 멘트를 똑같이 외운 것 같다.
"코리안? 술?"
"술?"_나는 처음 술이라는 얘기에 소주가 그렇게 유명한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머뭇거리며 갸우뚱 하니 그때서야 "노스? 사스?"라고 한다. 그때 나는 '술'이 서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당연히 South 지, 너는 북한 사람을 여기서 본 적 있어?"라고 되물으니 자신도 없다고 했다. 그다음, 내가 어느 나라인지를 파악하면 쿠반들은 자신이 한국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들을 늘어놓는다.
서울/시크릿가든/태권도/심지어 오래된 88 올림픽까지..
University of Havana
집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 내에 위치한 Cadeca(환전소)를 가기 위해 거리를 나서면서 Betty는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자신의 모교 하바나 대학교를 가볼 것을 추천했다. Calzada de Infanta를 따라가다 왼쪽을 보면 바로 학교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대학교 같지 않은 웅장한 모습의 건물을 보고 한눈에 Betty가 말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쿠바의 대학은 전공과목에 따라 대학이 나뉘는데 하바나 대학은 경제나 사회 관련 분야의 것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쿠반들은 모든 교육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만큼 대학 진학률이 높고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시험은 역사나 언어에 관련된 시험을 보며 한 번에 입학시험을 통과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그냥 무작정 걸었다.
처음에는 지도에 의존해서 걷다 반듯하게 잘 정돈된 거리가 길을 찾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걷다 멀리서 성처럼 보이는 (National Hotel) 건물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여느 때처럼 쿠반이 말을 걸었다. 내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
"오늘 시가 축제랑 룸바 축제하는데 사진 찍기에 좋을 거야, 보고 싶지 않아? 바로 이 근처에서 하고 있어"
"시가는 관심 없고, 룸바 축제? 어디서 하는데?"걸려든 것이다. 저쪽으로 가면 된다며 앞장서는 쿠반. 한참을 걷고 꽤 먼 거리를 왔는데 슬슬 걱정이 되었다.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냥 외국인을 위한 친절인 걸까?'
비록 반나절 시내에 있으면서 내가 느낀 건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는 것이다.
"그 축제가 정확히 어떤 축제인 거야? 입장료 내야 해? 나중에 나한테 장소 알려줬다는 대가로 돈 달라고 하는 거 아니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지만 불리한 듯한 질문만 받으면 급격히 영어 못하는 척.
"머니? 노. 프리"
그는 Hammel 거리로 데려갔다.
쿠반의 팝아트를 보다 Callejon de Hammel
풍부한 컬러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전시된 이 거리를 들어서자마자 나는 호기심 가득 찬 꼬마 아이가 된 것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모든 작품들 하나하나가 위트 있고 아이디어로 가득한 작품들이 쿠반들의 밝고 흥 넘치는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 작은 거리는 Afro-Cuban 스타일로 Salvador Gonzáles Escalona라는 아티스트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곳에는 개성 있는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나 타투샵이 밀집해 있었고, 거리 한 모퉁이에서 이 작가의 작품 활동을 후원하기 위한 CD를 팔기도 했다.
그 동네 주변을 한 바퀴 휙 돌고 나서 그가 말한 룸바 축제는 이 곳을 말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룸바를 추는 사람은 눈을 씻고도 볼 수 없었던 이 곳을.. 그는 그냥 흥미 끌기 위한 수단으로 말한 것이었다.
나에게 길을 안내해 준 그 쿠반은 이 거리를 빠져나오자마자 시가 페스티벌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다시 권유했고 나는 가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나를 마트 앞까지 데려갔고, 나에게 우유 두팩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사주기 바란다며 애걸하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태우지 않은 매끈한 시가를 들고 있던 그는 자신의 처지로는 우유를 살 수 없고 나에게 그 돈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면서 아기가 굶고 있다며 동정표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거절했고 그는 바로 나에게서 멀어져 혼자 걸어가는 다른 여자 외국인에게 말을 걸며 접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