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혼자 떠난 쿠바 여행
Dec 15, 2016
푹푹 찌는 열대나라인 쿠바의 낮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만 되어도 이곳은 해가지고 어둠이 밀려온다.
전날 Betty는 나에게 쿠반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며 Plaza de la Catedral에서 열리는 오픈 재즈 콘서트를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내가 그들의 음악에 대해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되었는지 내키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며 이게 어떤 공연이고 뮤지션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한다. 흥 넘치는 쿠바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춤과 음악인만큼 그들의 문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해가 진 깜깜한 밤이 되자 이곳은 내가 봤던 곳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다르게 변해 있었다. 중세시대의 귀족의 우아함을 뽐내는 것 마냥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너무나 강렬해 마치 Midnight in Paris 주인공처럼 내가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닌지를 잠시 생각해 본다.
Malecon은 밤일 때가 더 아름답다는 Betty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잔한 강의 물결처럼 이곳에서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내 친구들과 가족들이 떠오른다.
만약 이 광경을 혼자 와서 봤다면 마음 한편이 쓸쓸했었을 것 같다. 다행히도 새로운 나의 쿠반 친구 덕에 지금 순간이 전혀 외롭지 않다. 누군가 함께 지금, 이 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혼자 하는 여행은 편하지만,
함께 하는 여행은 그 기쁨의 배가 된다.
말레콘을 따라 걸으면서 언젠가 느껴보았던 낯익음이 머릿속에 맴돈다.
강가의 분위기며 이곳의 냄새, 비슷한 기후. 끊임없이 머릿속을 탐색하면서 나는 그 낯익음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한참 무더웠던 여름, 처음 주강의 야경을 보고 감탄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봤던 유람선과 강 근처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 습한 공기의 향. 그때의 모든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거의 10년 가까이 잊고 지냈던 기억이 비슷한 분위기 하나로 생생히 기억난 것이다. 불현듯 잊고 지냈던 추억이 다시 떠오른다는 건, 잃어버렸던 물건을 생각지 못하게 되찾았을 때만큼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대화는 어느샌가부터 사라졌고 나는 잠시 옛날의 추억에 잠겨 있었다.
9pm_ Cañonazo Ceremony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처럼 끊임없는 얘기를 나누며 공연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생각지 않은 총소리, 아니 그보다도 더 큰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짧고 강렬하게 나는데 순간 엄청난 일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 파악을 하려고 두리번거렸지만 이 소리를 듣고 당황한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는 걸 눈치챘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 betty는 재밌다는 듯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영문을 몰라 두 눈 번쩍 뜬 채 두리번 대는 나에게 betty는 9시마다 세리머니를 하는 거라 아무 문제없다고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말해줬다.
매일 저녁 9시 18세기 군복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요새에서 캐리비언의 옛날 모습을 재현하는 총성 세리머니를 한다고 한다. 내가 머물고 있던 곳 Vedado 까지 들리 정도이니 이 소리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Afro-Cuban 음악에 매력을 느끼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공연은 벌써 시작된 상태였고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아티스트와 친분이 있던 Betty 덕에 나는 운 좋게도 무대 바로 옆 프레스석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SINTESIS라는 그룹은 정통 쿠반 음악이 아닌 퓨전 음악을 추구하는 그룹으로 락과 재즈가 혼합된 현대적인 풍의 아프간 쿠반 음악을 한다고 했고, 이곳에서 인지도가 높은 그룹이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뭔가 토속적이고 올드한 느낌이 있지 않을까 라는 예상을 했었지만 그들의 음악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세련되었고 현대적이었다. 대성당 광장을 꽉 채우는 보컬들의 시원시원한 음색을 듣자마자 이 신선한 음악에 나는 매료당하고 말았다. 프로페셔널한 가수이니 노래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해도 무대 연출력이나 다채로운 구성이 두 시간 동안 눈을뗄 수 없게 만들 만큼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콘서트는 점점 무르익어 갔고 어느새 사람들은 자신의 흥을 주체하지 못한 채 큰 소리로 합창하며, 어디서 들고 나타났는지 한 손에는 위스키잔을 들고 몸을 강렬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군중들 사이에서 원을 만들어 자신들의 격정적인 댄스를 나눈다. 순식간에 콘서트장이 댄스장으로 바뀌는 재밌는 광경을 보면서 '아! 이것이 쿠반의 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서도 그 열기와 음악에 대한 전율이 몸에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우리는 끊임없이 공연 얘기를 했고 그들의 음악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이 신선한 충격은 내가 쿠바 음악에 관심을 갖게 한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