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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14. 2018

권력, 그 뻔뻔함에 대하여

퇴사의 이유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류는 주로 학교에 모여 있다. 그 절정은 고등학생 때였고 나는 담임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사와 불화했다. 특히 영어 선생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는 늘 조끼까지 갖춘 양복을 말쑥하게 빼입고 꼿꼿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손에는 얇은 회초리를 들고 다녔다. 어깨는 떡 벌어지고 다리는 자못 길어 보통 중년 남성의 체격에 비해 확연히 다른 데가 있었다. 말을 짧게 하고 목소리는 가늘고 어딘지 교만한 구석이 있었는데 심심치 않게 여자 교사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성적인 대상으로 그리며 희롱했다. 슬금슬금 촌지를 받아먹는 건 그의 문제만은 아니었지만 다른 교사와 좀 다른 면이 있었다면 그는 촌지를 받고도 티 나게 누군가를 편애하는 노동을 하지 않더라는 거. 매사 그렇게 실속 있는 인간이었다. 어딘가 자존감이 팽배한 느낌이었고 의기양양한 데가 있어서 어떤 선생도 어떤 학생도 그를 쉬운 상대라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학생을 대할 때 어찌나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그 권위적인 태도가 너무 싫어 그가 영어 교과서를 읽을 때면 메스꺼움을 느낄 정도였다.


난 체구가 작아 늘 교탁 가까운 자리에 앉기 마련이었는데 늘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내 화를 알아차리기 전까지, 즉 세로로 세운 자나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통을 얻어맞기 전까진 결코 이글거리는 시선을 떨구는 일이 없었다. 그 모로 세운 자를 맞으면 웬지 통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견딜 수 없게 싫었던 건 그 인간이 주로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 가볍게든 크게든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한 번은 자율학습 시간에 평소 조용하고 유순한 친구가 어떤 이유에선지 신이나 소란을 피웠는데 마침 감독을 돌던 그 자 눈에 띄었던 거다. 떠든 사람 나오라고 하는 중에 그 친구가 말대꾼가를 했고 권위에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한 그 인간이 성큼성큼 교실 안으로 들어와 친구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친구는 뺨을 맞자마자 무릎이 부서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꿇어앉아 양손을 싹싹 빌며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를 주문 외듯 반복했다. 그 친구의 행동에 당황한 그 인간이 빠르게 교실에서 퇴장하고 사태는 수습되었다. 난 친구가 그 폭력 앞에 자동반사적으로 몹시 비굴한 태도를 취한 것이 내내 걸렸다. 그 자가 자기 분에 못 이겨 벌인 폭력이 결국 그 친구로 하여금 친구들 앞에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만들었다는 그 사실. 그 친구가 느낄 모멸과 수치심이 어찌나 큰지 내 뺨이 다 붉어질 지경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친구에게 평소 어떤 외상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사건 이후 나는 그를 증오하기에 이르렀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증오한 만큼 그는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지난해 내가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오면서 20년 전 고교 시절 나를 마주했다. 누군가 하는 짓을 더 두고 볼 수 없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치켜뜨는 일. 오로지 자기 위신과 권위를 위해 사는 그 인간들을 노려봐야 했고 노려보고 싶었다. 허무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게 다였다. 그 뭣도 아닌 모래성 같은 권위에 도전한 결과 싹수없다는 말부터 온갖 말을 들어야 했는데 그 말들은 모로 세운 자처럼 통쾌한 구석이 있었다. 인생의 축복이라면 그리 노려볼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인데, 한번 노려 보기로 결심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뻔뻔함. 권력이 몸에 밴 자들의 특유의 그 뻔뻔함 말이다. 조직을 떠나겠다고 공식적으로 메일을 보낸 다음날 대표라는 작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무실로 찾아와 점심이나 먹자 했다. 퇴직금은 잘 챙겨주겠다고. 도무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화장실로 몸을 숨기고. 그 작자는 사무실을 나가면서 "애네 정말 형편없는 애들이구나"라는 말을 뱉었다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나와 동료들이 분노한 만큼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돌고 돌아 권력자들을 받치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중간지대 어딘가에 어중간히 발 걸치고 저 혼자 공명정대한 판관같이 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만두겠다고 공식적으로 의사를 밝힌 날, 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고. 그 "잘" 마무리는 그 대표라는 작자가 내 지인들에게 전화 걸어 전했던 말이 아니던가. 내 생에 그리 허무하고 비겁한 말은 난생처음이다. 차라리 '내가 살아보니 그렇게 싸우고 나오면 종국에 손해는 네가 보더라'는 충고가 솔직해서 고마웠다. 제발 어떤 비판이든 조언이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선 위치부터 돌아보시라.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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