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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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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16. 2018

단편적 기억이 삶에 미치는 영향

나의 기억력은 점점 별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서서히 흐려지는 기억도 있지만 일상다반사라 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내 어린날을 떠올리면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지나온 시간이 내 것이 아닌거 같아 허무한데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내게 남아있는 선명한 기억들은 대부분 오래전의 것들이다. 가령 중 3때 독서실 가던 길에 (나는 눈치보지 않고 자기 위해 독서실을 다녔다) 사고로 탈장된 고양이 사체와 며칠 후 시멘트로 덮어버린 그 길을 생생히 기억한다. 차마 그 곳을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며 걸었던 그 환한 대낮의 삭막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또 다른 죽음에 관한 기억 하나. 내 남동생은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되 사고로 숨을 거뒀다. 나는 동생이 떠난 날을 기억한다. 엄마는 슬픔 몸을 가누지못해 할머니에 의지해 캄캄한 대문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날 우리가 세들어 살던 주인집 언니들과 놀고 있었는데 엄마 주변의 한없이 슬프고 무거운 기운에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겨우 대여섯살이나 되었을까. 동생의 죽음에 대해 나는 오로지 그날만을 기억한다. 그날 이후 동생에 대한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아이 어른이 된 셈이다.   


동생 일은 하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깊은 슬픔은 일시적이나마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또한 사람들은 주변의 불행에 좀 이중적이라 부모님은 직장 동료,친구, 친지들에게 수군거림의 대상이었을테고 나는 나대로 또래들에게 종종 놀림거리가 되었다.


아홉살이나 되었을까. 하루는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이를 은근히 놀려댔다.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하고 수치스러웠다. 너무 속상해 눈물이 났는데 꾹 참고 있다가 집으로 와 엄마를 보고는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설움이 목구멍까지 차 하마터면 엄마에게 우는 이유를 말할뻔 했다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내 울음을 멈췄다. 세월이 꽤나 흘러 내가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엄마는 지나는 말로 떠난 동생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기억한다고 하자 모친은 무척이나 놀랜 기색이었다.


대여섯살의 단편적 기억이 내 유년기 혹은 인생 전체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왜냐하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하하호호 살아온 거 같은데 무의식은 아련하고 시린 상처를 잘 기억한다. 조각난 기억들을 수집하고 그때 그 감정을 돌이켜보는 과정이 때론 성찰이고 때론 즐거움과 괴로움의 환생이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가니 (선배님들 죄송..) 희미해져가는 것에 대한 집착이 늘어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싫든 좋든 기억된 감정들이 소중하다.


과연 나는 일년 중 몇 일에 해당하는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걸까. 잃어버릴 기억이 한없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 모두 기억하지 못해 버티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201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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