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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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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12. 2018

아빠의 허리

상실에 대한 두려움

밤의 속성이 그러한 건가. 극심한 우울과 공포는 잠들기 직전에 찾아온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불현듯 부모의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부친의 고질병인 요통이 심해진 까닭이다.


젊은 날부터 그의 허리는 집안의 우환 같은 거였다. 그의 아픈 허리 때문에 난 어린 시절 친척들 집을 전전했고, 젊은 모친은 성질머리 더러운 그의 병을 수발하랴 나를 챙기느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부친은 용하다는 침술원에 한 달가량 입원했는데, 다닥다닥 붙은 쪽방들에 요통환자들이 한방씩 자릴 차지하고 누웠다. 그 방은 성인 남자가 기어 다니기에 무척 비좁았고, 쾌쾌했다. 가끔 바퀴벌레도 출몰했다. 허술한 반투명 알루미늄 미닫이 문을 열면 바로 흙먼지 나는 땅이었는데,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문지방을 낮췄다 하기엔 안과 밖의 경계는 성의가 없었다. 그 앞에는 늘 앞이 막힌 싸구려 고무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그 고무 슬리퍼를 신고 나간 침술원 정원에는 늘 한가득 빛이 쏟아졌다. 꽤나 큼직한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도 있었다. 연못 수질은 아빠가 기어 다니는 방의 풍경 못지않게 탁했다. 연못을 가득 메운 잉어만큼 쪽방의 환자들은 차고 넘쳐 어린 내 속으로도 침술 원장이 꽤 돈을 벌었구나 싶었다. 침울한 쪽방살이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허리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연못에 잉어만 하염없이 늘어났다.   


어느 날엔가 우린 침술원 근처 여관의 가족탕을 갔다. 내 기억에 아빠는 벌거숭이인 채로 욕실을 기어 다녔다. 속으로 '우린 가족이니까 괜찮다'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씻긴 뒤 내보내고 아빠를 씻겼다. 아빠는 그 시절 참 딱했다. 성질은 더 더러워졌던 거 같고 엄마는 독하게 그 시간을 버텼다. 아빠가 처지를 비관할 때마다 엄마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탓에 아빠는 두고두고 고마워하면서도 한편 "네 엄마 독하다"는 말로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무하게 아빠의 허리는 말짱해졌다. 그는 자가 치유했다. 그 시절 또 다른 용한 한의사는 걷고 또 걸으라는 처방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기적처럼 부친은 새벽엔 조깅을 하고 저녁엔 테니스를 치고 주말엔 새벽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해가 지면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그의 병이 완치된 것은 내게 사건이 아니었지만 그가 아팠던 시절은 분명 사건적이었다.


그러고 근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다시 그의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새벽에 달리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퇴직 후 노는 게 심심하다며 다니던 곳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진지하게. 올여름 모친 퇴임에 맞춰 영국에 있는 동생을 보러 가자 했지만, 장시간 비행이 부담스러운 그는 시큰둥하다. 지금 상태론 엄마도 홀로 부담 없이 비행기에 오르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의 신경이 날로 날카로워지고 있다. 허리가 아파 모로 누워 잠을 잔다는데 어떤 날은 한숨도 자지 못한다 했다.


겁난다. 부친이 당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사는 날이 다시 올까 봐. 나이 든 사람은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잘 안 낫던데. 또한 엄마가 고생할까 봐 걱정이다. 그리고 결국 돌고 돌아 나는 내 걱정이다. 내게 남겨질 회한과 아쉬움, 누군가의 병치레 혹은 병수발을 목격하면서 느껴야 하는 피로감, 모친에 대한 안타까움 등. 제발 좀 나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제발 "나" 좀 걱정시키지 말아달라는 애원에 가깝기에 이제 "아픈 건 좀 어떠냐?"는 질문도 쉽지 않고.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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