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랑관장 Jul 12. 2018

인도 여행기: 인도의 동물들 편

비루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기

인도는 도시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볼거리가 적지 않지만 오랫동안 시선이 붙어있는 것들은 언제나 개, 고양이, 소, 원숭이, 낙타, 염소와 같은 동물들이다.


인도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를 향해 절이라도 할 줄 알았다. 소의 낙원이라는 이름 무색케도 정작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은 경외심은커녕 통행에 방해가 되는 소의 궁둥이를 철썩 때리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소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줄 알지만 그렇다고 자존심을 버리고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 없다. 가축으로 쓰임을 받지 않아 몸이 축나는 일이 많지 않은 듯하여 그런 면에서 낙원이라면 낙원이라 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거리에 소는 많다.


가장 경탄해 마지않는 종은 원숭이인데, 수도꼭지를 사용해 목을 축이는 그 정교한 손놀림과 영리함, 특유의 민첩함이 가히 위협적이어서 그이들 앞을 지날 때면 늘 가방을 움켜쥐게 된다. 한 번은 의도치 않게 그네들이 무리 지어 있는 길에 들어섰는데 내가 위협적이었을까. 끼익끼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새끼를 홱 낚아채 가슴에 품는데 심장이 쫄깃해졌다. 분명 영화 <혹성탈출> 은 허구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뭄바이에서 바나나를 훔쳐먹은 원숭이를 포승줄에 묶어 벌을 주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처럼 인간이 이윤을 남겨야 할 물건에 손을 대 고초를 겪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런 행위는 배고픔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어서 운이 좋으면 그 덕분에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사색하듯 넌지시 허공을 응시하는 원숭이를 보노라면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한편 고양이의 개체수는 현저히 적어 그 옥체를 마주할 때마다 사진 찍기 바쁘지만 늘 그러하듯 안하무인, 제 잘난 맛에 사는 건 한국이나 인도나 매한가지다. 배가 고파도 비굴한 법이 없고 훌쩍 식탁 위에 뛰어올라 밥그릇을 핥아대니 감히 저리 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간이 된 음식이 몸에 썩 좋지 않은 걸 알고도 배곯은 냥이 앞에 건강 타령은 어쩐지 비웃음을 살 거 같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개들은 늘 늘어지게 잠을 자고 먹거리가 충분치 않은지 대부분 배가 홀쭉하고 몸이 상처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간간히 개싸움을 하는 모양이다. 늘어지게 자는 개들은 결코 귓전에 울리는 사람 발걸음 소리에 잠을 깨는 법이 없다. 그 누구도 살금 거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개의 평화를 깨지 않는다.


실내 반려 동물 문화가 익숙한 여행객들이나 개나 고양이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호들 갑스 레 셔터를 눌러대며 애정을 과시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저 동물들을 있는 그대로 두고 과하게 애처로이 여기거나 혹은 못살게 굴지 않는다.


동물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도 비굴한 면모가 없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들이 그이들을 비루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인간, 너나 할 거 없이 사는 게 힘든 까닭인지. 노숙인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하는 구도자도 홀쭉한 자기 배만 채우지 않고 자신에게 먹을 것을 찾는 동물들과 먹을 것을 나눌 줄 안다. 동물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고 적어도 버림받을 걱정은 없어 뵌다.

말하고 보니 이미 편재해 있는 인도에 대한 환상 내지 경외심에 한술 보태고 있나 싶지만 여전히 이곳에 사람과 동물의 어우러진 모습은 특별한 데가 있다. 누구든 비굴해지지 않게 하는 것. 그건 최소한의 인간다움 일진대 어느새 마치 베풀 수 있는 아량이 되어버린 내 세계가 새삼 불만이고 말이다. 나는 오늘 몹시 이 곳 사람 행세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 여행기: 사랑의 도시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