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리 Mar 13. 2023

25. 나는 알고 보니 소라게와 닮았다

명상과 어떤 결심

문득 소라게가 떠올랐다. 빈 소라 껍데기를 찾아 집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특이한 존재. 그런데 사실 나도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가르바 핀다 아사나 자화상

수업을 앞두고 카페에서 하는 일곱 번째 명상이다. 오늘 이곳은 역대급으로 붐빈다. 대부분은 연말에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라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마치 설을 앞둔 시장을 방불케 했다. 다행히 맨 구석에 자리가 나서 명상을 했다.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예전 '비긴어게인'이라는 영화 제목을 딴 해외 버스킹 프로그램이 추천 영상으로 떠 있어서 보다 보니 줄줄이 몇 개 보게 되었다. 슬픈 노래 가사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았고 폭발적인 성량이 터지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니 미간이 손가락 두 개로 누르는 것처럼 아팠다. 미간이 아픈 건 보통 마스크 쓰고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한 상태에서 수업을 연속으로 하다 보면 종종 생기는 현상이었는데, 요는 산소 부족이다. 아마 노래하는 영상을 집중해서 보며 호흡을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게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머리가 조금 묵직하게 아픈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몇 가지 고민 중인 마음속 문제도 있었고 장소는 지금까지 중 가장 요란하고 번잡한 상황에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했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어깨에 가방을 메고 있다가 머리에 이고 있던 짐까지 모두 내려놓고 바닥에 냅다 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묘한 느낌은 쾌감에 가까웠다. 그 어떤 무거운 짐도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을 막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 멈출 수 없다.

호흡에 집중한 상태가 이어지자 소란스러운 가운데 몸에 움직임이 점차 줄어들며 몸(또는 앉은 자리)이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주변 소음을 비롯한 몸의 감각은 이제 껍데기가 되어 나를 괴롭힐 수 없다. 문득 소라게가 떠올랐다. 빈 소라 껍데기를 찾아 집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특이한 존재. 그런데 사실 나도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질량 보존 법칙에 의해 이 생명 에너지가 육신의 수명이 다한다고 해서 펑하고 터져 공중으로 사라질 리 없다. 원하는 것이 있는 한 윤회의 굴레에 갇힌 모두가 소라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집 짓는 이를 찾았으니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라고 선언한 붓다의 오도송처럼 나도 소라게에서 '게'인 부분을 찾아 더 이상 빈 소라 껍데기를 이고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집이 아니고 스스로 찾은 감옥이다.


**13분 명상 in 파드마

#명상67일째

이전 20화 35. 통증의 한가운데에서 명상을 외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