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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Apr 11. 2023

35. 통증의 한가운데에서 명상을 외치다

명상 vs 통증

하지만 고통에 온전히 잠식당하지 않고 의식의 밧줄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엎드린 이완 자세 자화상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통증을 견디자- 이런 것이 결코 아니고, 의학적 혹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과 별개로 즉, 그런 조치 과정과 그 이후를 모두 포함해서 어쨌든 고통이 다 가시기 전에 앓는 상태에서의 명상이 미치는 통증 경감 효과에 관한 나의 실제 경험이다.


오늘로 명상 89일째,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명상을 시작한 이래로 두 번째 아픈 날이다. 오전 강의 무렵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늦은 오후부터 머리가 묵직하게 아프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가끔 체하면서 머리가 아플 때가 있는데,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 횟수가 1/4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주에는 고민할 일도 있고 늘 새벽 2시 넘어서 자서 그런지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결국 체증과 두통이 심해 저녁을 굶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비슷한 이유로 아팠을 때와 아예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아팠을 때와 비교해 보면 분명 차이가 있었다. 각각의 이벤트를 이어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계단식으로 점점 상태가 호전되었다. 참고로 학생 때부터 체하는 일이 종종 있다 보니 병원, 약국, 한의원 등등 살면서 여러 곳을 가보고 여러 가지 처방을 해보다가 그나마 나에게 가장 효과가 있는 방법(사혈침)으로 조치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통증을 견디자- 이런 것이 결코 아니고, 의학적 혹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과 별개로 즉, 그런 조치 과정과 그 이후를 모두 포함해서 어쨌든 고통이 다 가시기 전에 앓는 상태에서의 명상이 미치는 통증 경감 효과에 관한 나의 실제 경험이다.

우선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는 마치 짐승처럼 앓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통증이 있을 때에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마룻바닥에 담요를 두르고 웅크린 채, 가만히 있어도 아파서 다친 사슴처럼 고통에 몸부림쳤다. 통증이 온몸과 정신을 잠식한 상태였다.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회사를 다닐 적엔 상태가 더욱 심각해서 응급실에도 실려갔다. (그러나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관련 검사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한 이후 지난번에 체해서 힘들었을 때에는 처음으로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호흡을 보고자 했다. 그냥 숨을 쉬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거칠더라도 어떻게든 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점차 바닥에 웅크린 자세 이외에 앉거나 설 수 있었고, 앓는 소리 이외에 대화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통증에 잠식당한 몸을 조금 건져 올렸다. 아마도 고통에 예리하게 반응하는 감각에만 온통 뻗쳐 있던 신경을 코 끝 숨이라는 다른 대상으로 돌린 것이 유효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오늘, 통증은 여전히 무겁고 괴로웠지만 확실히 전만큼 집요하게 나를 붙잡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호흡을 보는 것과 더불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상태를 낫게 하기 위해 움직였다. 지압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걸으면서 두 손으로 목 뒤쪽을 받쳐 약간의 압력을 가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창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쐬기도 하며 그 모든 과정에서 중간중간 숨을 쉬려고 했다. 그리고 앓는 것, 말하는 것을 넘어 농담을 하거나 웃을 수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통증의 정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이 각각 다른 결과를 도출해 냈다. 전에는 아프다는 느낌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서 확성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고통이 세포마다 크게 울려 퍼졌다. 마치 통증의 숙주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명상을 시작한 후 호흡을, 몸이 아플수록 짧아지고 약해지는 호흡을 보려고 하자 이런 작지만 나를 살리기에 충분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물줄기를 바꾸듯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이 무엇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통증은 분명 완화될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꼈다.

정말 아플 땐 누가 대신 겪어줄 수도 없는 일이며 나 자신과 세상이 싫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통에 온전히 잠식당하지 않고 의식의 밧줄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호흡이라는 밧줄이 한줄기 빛처럼 내려와 고통의 바다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것이다.


** 16분 명상 in 파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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