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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내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

명상과 자화상

by 김경리

종이와 연필과 펜의 고요한 세계에 나를 새겨서 띄워 보낸다.

나의 자화상들

오늘도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면 행복하다. 아마도 명상의 원리와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손에 쥔 연필이나 펜 끝의 방향을 컨트롤하는데 온 마음과 얼굴을 집중하고 있으면 복잡한 머릿속이 '휴지통 비우기'를 한번 누른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그전에 얼마나 하루가 힘들었는지-와 관계없이, 나아가 지난날들이 얼마나 고되었는가-와 상관없이 지금은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려는 손과 그 끝에서 그려지는 선 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림이라는 건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하다. 그저 평평한 면에 점과 선을 이어 나갈 뿐인데 그것들은 그리려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 저마다 형태와 의미를 갖게 되며 그렇게 일종의 '생명력'을 나눠 갖게 된다.

그래서일까, 자화상을 그려 놓으면 실력이 좋지 않아서 별로 닮지는 않았어도 그것 또한 다른 차원의 나-라고 느껴진다. 종이와 연필과 펜의 고요한 세계에 나를 새겨서 띄워 보낸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마치 '만트라'를 반복하며 외듯이, 나는 자화상을 계속 그려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17분 명상 in 파드마

#명상90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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