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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Oct 07. 2023

단서는 이 안에 있습니다

#10

2023.10.7
제목: 단서는 이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나는 돋보기를 들어

남겨진 단서들을 들여다봅니다 이제부터는
신중해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옷이나 물건에 있지 않으므로 방 안에 풍경들을
그대로 지나 책장 혹은 내 문서에 숨은

글을 봅니다 일기도 좋고 낙서도 좋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때로 넘치면

펜 끝 혹은 키보드 위에 번지는 경향이 있으니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방식이 묻어 있어

그 사람의 눈과 귀와 피부를 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무언가 허전합니다

마음을 보기 위해선 일기 한두 편으론 부족해서
모든 글들을 나란히 펼쳐놓아 차례차례 살펴봅니다

천천히 비밀이 드러납니다 그건 바로
자주 보이는 단어들 반복되는 표현들

다른 어휘로 그러나 비슷하게 평범한 듯 등장하는  
문장들 속에 내면으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가 있습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돋보기를 한번 더 꺼냅니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다-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이 표현은
과거에 떨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혹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그래서 벗어나고 싶다는 문장으로 재배열됩니다

마음에서 흘러나와 붉게 번진 글에 따끔
속이 쓰려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열쇠를 찾았으니

이제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조심스레
일기장을 덮어 둡니다 아무도 읽지 않은 것처럼

아 표지에 이름이 보이네요
내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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