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쇼크 미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이 멈춘지 3개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6월 즈음엔 슬슬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얼마전 터진 이태원 쇼크 때문에 좀더 미뤄질 것 같습니다.
일을 정확히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지쳐가던 중에,
문득 저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상이 멈추었다는 표현을 썼지만 나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꼬박꼬박 나오는 가스비마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멈춘 것은 아니고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국이 되기 전에, 그러니까 요가 강사를 시작한 이후
수업 스케줄에 따라서 나름 규칙적인 일주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정한 활동 시간과 늘 만나는 사람들, 자주 가던 식당, 가끔 보던 친구들이 지금은 퍽이나 낯선 일들이 되었습니다.
마치 스노우볼에 갇힌 눈사람 모형이 된 것 같다고 할까요.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벌레가 된 것 같다고 할까요.
바깥의 세상살이와 분리되어 제구실을 못하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요가의 언어> 책을 냄과 동시에 어쩌다보니 유튜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요가 유튜버로서(쑥스럽네요) 영상을 올리면서 종종 요가를 하고 있기 망정이지 아니면 저는 지금쯤 어떤 모양새로 있을지... 다행입니다.
아마 어디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찐 방구석 폐인이 되었을 거예요.
실은 지금도 반쯤 그런 상태입니다.
아주 생산적인 사람이라면
이참에 읽고 싶었던 책을 왕창 읽어보자,
평소 취약했던 아사나를 마스터해보자,
이런 각오를 실천에 옮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지
일의 흐름이 끊기자 마치 모터가 꺼진 배처럼
그런 가능성은 생각으로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현실은 끼니를 챙겨먹고 집안일을 깨작깨작 하다가
자기 전에 다운독(아도 무카 스바나 아사나)이나 겨우 하면 다행인 것입니다.
매일 가던 곳에 가지 않고
하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몰고 옵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대충 빵을 씹어먹고
해가 비스듬히 누웠을 즈음에 동네 산책이나
하려고 집을 나서면 기분이 요상해집니다.
이미 내 머리 위에서 떠나 아주 멀리
수평선 부근 건물 옥상에 머물러 있는 햇볕이
낭비된 나의 하루를 세상에 일러바치는 것만 같습니다.
<미생>에서 거리에서 쏟아져나오는 직장인들과
반대 방향으로 홀로 걸어가던 장그래가 느꼈을 그 감정이 뭔지 새삼 알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자괴감의 홍수에 빠져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이 들때는 몸을 움직이면 좀 나아집니다.
고양이 자세라도 하면 개운하거든요.
어려운 시기이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한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마시고 내쉬는 것으로
나를 짓누르는 불안감을 덜어냅니다.
고양이 자세를 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일정하게 굴러가던 수레바퀴에서 본의아니게 벗어난
지금 이순간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을 돌아보고 돌보는데
적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가뭄에 콩나듯 하던 명상을 할 수 있는
완벽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어려서부터 항상 궁금했던
나는 어디서 왔고 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세상을 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마음껏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요.
정신 승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절망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강제로 한가해지고 나서야
명상을 더 자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한참전부터 매일 꾸준히 명상을 하고 계신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커집니다. 존경합니다.
저처럼 지금의 사태로 일을 하지 못하고
기약없는 나날을 꾸역꾸역 보내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잘 쉬다가
또 잘 걸을 수 있도록
나 자신과 모두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