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꿈

나는 한강 공원 입구 근처에 묶여 있다.

by 김경리

나는 한강 공원 입구 근처에 묶여 있다.

정확히는 한쪽 바퀴가 거치대에 묶인 자전거다.


공원에는 볼 것이 많다.

매일 봐서 눈에 익은 강아지가 킁-하고 다가와서

지루하지 않냐-고 물었는데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 안다면 그런 걸 묻지 않았을 것이다.


진흙투성이인 내 바퀴를 보고 항상 서둘러 지나가는 사람 덕에 강아지에게는 미처 알려주지 못했다.


내 바퀴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아마도 조금 오래 매어 있었던 탓에,

계절이 바뀔 때까지 햇볕과 밤바람을 여러 번 맞은 탓에,

그리고 지난번 홍수로 반쯤 물에 잠겨 있던 탓일 것이다.


그때 체인 사이사이 끼인 진흙이 굳어지긴 했지만

같이 잠겨 있다가 어디론가 치워진 풀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다.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아 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느리거나 빠른 발걸음, 한쪽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근처 벤치에 기대어 앉은 사람의 웃음, 운동 기구 손잡이가 휙휙 힘차게 움직이는

모양 같은 것들.


머리 위로 열차가 지나갈 때는 혹시 저기에 주인이 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전에 몇 번인가 열차를 타고 강 위를 건넌 적이 있다.

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비늘처럼 출렁이던 은빛 강보다도 그걸 보는 주인의 눈이 더 빛났던 것을 기억한다.


열차 소리가 멀어지자 쉭-하며 빠르게 자전거 하나가 옆을 스친다.

“마지막으로 달린 게 언제야?”

질문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뒤따른다.


바퀴가 터질 듯이 달리던 날이었다.

강물에서 이따금씩 커다란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고

깍깍- 우는 새소리가 옆에 훅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멀어지고 수없이 작은 흙 알갱이들이 바퀴에 튕겨 순순히 흩어지던 날.


손잡이를 꽉 쥘 때 느껴지던 온기가 어땠는지

해가 비스듬하게 비추는 틈에 떠올려본다.

달랐었나, 이제는 꿈처럼 아득하다.

잘 닦여서 반들반들하던 검은색 안장은 누군가 떼어 간지 오래고

은색이던 몸체와 페달은 꼭 사막에서 온 것처럼 모래로 뒤덮였다.


저기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린 사람들을 보면

주인도 나처럼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강물이 비치던 눈동자를, 천으로 안장을 닦아주던 손을.


주인이 마지막으로 나를 놓고 간 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아마 이번엔 조금 늦어지는 것일 뿐이다.

나는 조금 휘어지고 진흙으로 무거워진 바퀴를 느리게 움직여

부드득- 오래된 기지개를 켜고

주인의 느린 걸음에 맞추어 기꺼이 굴러갈 것이다.


머리 위로 열차가 또 지나간다.

언젠가 저 열차를 타고 주인과 강을 건너던 날을 기억한다.

햇볕이 비늘처럼 꿈틀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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