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깃줄에 앉은 비둘기다

여기는 꽤나 안정적이다.

by 김경리

나는 전깃줄에 앉아 있는 비둘기다.

도심에는 나무가 별로 없고

딱딱한 건물에 앉기는 발이 배겨서

하늘에 걸린 도톰한 전깃줄을 쥐고 앉았다.


여기는 꽤나 안정적이다. 가끔 날개를 스치는 바람이 차갑지만 보도블록 위에 웅크리다가 종종 떨어지는 담뱃재나 침 세례를 피하는 일보단 덜 고달프다.


지난번에는 껌을 밟고 며칠 동안 깽깽이걸음으로 다니며 고양이에게 쫓기는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여기다. 위에서 보면 고양이가 솔방울만큼 작다.


깃이 낡고 몸집이 굵은 비둘기 하나가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나무옹이처럼 목 옆에 튀어나온 혹이 있어서 엇비슷한 회색의 무리들 중에서도 곧잘 눈에 띄던 양반이었다. 조금씩 커지던 혹이 이젠 안 커지나 보다-며 머리를 갸웃하고 낙엽에 붙은 걸 야무지게 쪼아 먹던 그가 안 보인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비둘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꽃잎만큼 가벼워진 몸으로 단번에 떠올라

철새들처럼 구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떠났을 것이다.


떠나는 길에 인사는 따로 하지 않아서

눈으로 헤아려본다.


오래된 나무를 닮은 비둘기 하나가

지금쯤 저기 어딘가 가고 있을 것이다.


큰 구름이 비켜나며 겨울 햇살이 등에 닿는다.

부풀린 깃털 사이로 파묻은 부리를 부스스 꺼낸다.


전깃줄에 앉아 하늘에 말을 걸어본다.


"거기는 어때? 춥진 않고?"


먹을 건 좀 있냐는 말은 삼킨다.

그 양반이라면 분명 뭐든 야무지게 잘 먹을 것이다.


해가 기울고 하늘에 물 빠진 단풍색이 돌기 시작하면

바람이 더 매워질 것이다. 그전까지만 조금 더,

나는 전깃줄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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