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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Dec 31. 2020

나는 겨울에 핀 장미다

식은 잿더미 위에 떨어진 앵두 한 알이다

나는 겨울에 핀 장미다.

식은 잿더미 위에

떨어진 앵두 한 알이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해를 정통으로 맞을 수 있어서

저 아래 잠든 친구들과

엇갈려 깨어난 모양이다.


푸석푸석 마른 넝쿨과

헐벗은 가지 위로 텅 빈 하늘,

먼 산에서 까마귀 소리만

간간이 울린다.


무채색의 날이 저물고

밤바람이 오소소 불어온다.


건너편 수풀이 흔들리며

아주 작고 부스스한

고양이 하나가 삐약-하고

어설프게 걸어 나온다.


털이 곤두서는 차가운 공기,

먹을 것도 숨을 곳도 없다며

바스러진 낙엽 위에서 운다.


너와 내가 이르게 난 건지

아니면 늦게 난 건지 가늠해본다.


뒤이어 나온 어미 고양이가

어린 고양이를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시린 꽃잎을 흔들어 보인다.


꼬마야, 너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새로 돋아난 잎이 푸르게 물들고

사방에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퍼질 때


나비 다가

볕에 데운 보드라운 흙 위에 앉아

솔솔 잠이 오는

그런 날이 분명 올 것이다.


다시 홀로 남아

별이 땅에 떨어진 도시를 내려다본다.


남은 해의 온기로 오늘 밤,

그리고 아마도 며칠밤을 더 버틸 것이다.


이담에 흐드러지게

피어날 꽃들에게

그 작은 고양이를 보거든

안부나 전해달라고-


마침내 바람에 흩어질 때

팔랑팔랑

인사를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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