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 입은 군주들의 사법 치외법권이라는 오만한 성벽
"판사의 절대 권력은 '법의 정의'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파산이 만들어낸 '사법적 독재'의 산물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일련의 판결들을 마주하며 대중의 보편적 상식과 법정의 결론 사이에 놓인 거대한 심연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법의 수호자라 믿었던 이들이 내린 결단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최종적 권위를 쥐고 있다는 묘한 우월감일지도 모릅니다. 법전의 문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판결문 속에 담긴 논리는 평범한 시민들이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그들만의 오만한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프랑스 대혁명 직전 왕권과 경쟁하며 자신들만의 견고한 기득권을 지켜냈던 법복 귀족들의 귀환을 보는 듯합니다. 현대의 판사들 역시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거룩한 방패 뒤에 숨어 외부의 어떤 견제나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사실상의 사법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법정은 이제 만민에게 평등한 진실을 가리는 공공의 광장이 아니라 법복을 입은 새로운 군주들이 그들만의 잣대로 통치하는 폐쇄적인 무대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느껴지는 '우월적 지위'는 그들이 법을 수호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최종적 권위를 가졌다는 역사적 오만함의 발로입니다
미셸 푸코가 지식과 권력의 내밀한 결탁을 해부했듯이 이 새로운 군주들은 법리라는 고도의 전문 지식을 독점함으로써 스스로를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들이 행사하는 독립성은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 아니라 자신들의 오판이나 자의적 해석마저도 무결한 것으로 포장하는 기득권의 성벽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오만해지기 마련이며 무오류의 환상에 빠진 권위는 시대의 맥락과 대중의 고통을 읽어내는 공감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국가 권력의 폭주를 막고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사법의 독립성이 역설적으로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고 다수의 상식을 억압하는 가장 폭력적인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은연중에 내비치는 우월적 지위는 험난한 고뇌를 거쳐 법의 존엄을 지켜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판결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구조적 특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공정을 지키기 위해 쥐여준 망치가 도리어 시민의 상식을 부수고 자신들의 성을 높이는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는 기막힌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대중이 법전의 투명한 텍스트를 믿지 못하고 오직 법대 위에 앉은 이들의 입술만 불안하게 바라봐야 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근대의 합의를 상실한 것입니다. 법의 지배가 무너진 자리에 법관의 지배가 고착화될 때 우리가 피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의 토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서서히 부서져 내릴 것입니다. 역사 속의 법복 귀족들이 결국 시대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듯 책임지지 않는 권위로 쌓아 올린 이 서늘한 오만의 성벽 또한 영원할 수는 없다는 준엄한 진리를 뼈아프게 새겨야 할 때가 아닐는지요.
이번 내란 재판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이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관의 지배(Rule of Judges)'로 변질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권력의 비대칭은 결국 사법 민주화라는 거대한 저항에 직면해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재판에서 나타난 판결의 무게감과 그에 따른 판사의 권위는, 결국 우리 사회가 정치로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사법부에 떠넘긴 대가로 지불한 '권력의 기형적 비대화'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