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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Handel - Minuet in G Minor

헨델 미뉴에트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매일 써야지 하는 마음이 있으니 일주일만이라도 그것은 대단히 오랜만으로 느껴진다. 잠깐 쉬면서 브런치를 읽다가 어떤 글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북받쳐 펑펑 울어버렸다. 왜 울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내용이 나의 삶의 경험과 닿아 있을때 나는 그 안에서 그때의 나와 내 주변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햇빛이 매우 눈부시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 햇빛이 조금은 불쾌하리만치 뜨겁게 내리쬔다. 요즘 홀릭하고 있는 헨델의 미뉴에트를 연습한다. 내 딴에는 잘 쳤다고 생각하고 녹음을 해본다. 녹음한 걸 다시 들어보니 아주 엉망이다. 직접 치고 있는 동안에는 내 소리를 객관적으로 듣기 어렵다. 녹음한 걸 들으면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이 얼마나 어이없는지 알게 된다. 그것마저도 아주 잘 봐줘서 그런 것이란 걸 안다. 그래도 좋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이정도면 발전의 여지가 있다.


헨델의 미뉴에트 G minor, 이 곡은 처음 들을때부터 특별한 감정을 자아내는데 그게 가령 어떤때 일어나는 것인지 잘 파악하지 못하겠다. 지난 기억들을 뒤적거리며 비슷한 감상을 찾아본다. 분명 있었는데 어디론가 숨어버린 기억같은 것, 그때의 날씨와 조도와 공기와 분위기,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졌을법한 그런 애수같은 것, 또는 지금도 바로 내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갖고 있는 말 못할 감정(이 있다면)같은 것. 그렇게 뭉뚱그려져 있으니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는 것이다.


조성진의 버전으로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너무 모던했고 인간적이었고 아련했다. 점잖은 불륜? 이루어지지 못할 관계? 뭔가 눈앞에 씬이 펼쳐지는 듯 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이런 곡을 작곡했으리라 믿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헨델의 곡을 쳐보려는 시도조차 안했던 나자신을 탓했다. 그만큼 고지식한 이미지였던 헨델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준 곡이다.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버전을 들어보니 조금 더 고전적인 느낌이 들긴 했다.


내가 힘겨워하는 부분은 역시 트릴인데 정말 쉽지 않다. 트릴부분만 가면 애써 끌고온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기분이다. 뭔가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이 하고 싶은데 나는 트릴이 시작하기 전부터 그 트릴을 위해 달려가서 지금이야!하고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다가 뭔지모를 아쉬움만 남기고 서둘러 다음 음으로 무마하는 느낌이다. 영 시원찮다. 트릴이 곡 중간부분에 연속적으로 대거 포진해 있어 그 트랩에 갇혀버리면 자괴감이 들기에 딱 좋다. 가끔 잘 쳐질때는 오히려 트릴을 의식하지 않고 손가락을 놀릴때인데 그땐 잘 쳐버린 것에 놀라 다음을 망치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해야만 하게끔 만드는 마력이 이 곡엔 있는 것이다. 이런 중독성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어쩌면 자연스레 곡을 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평생 가져가기에는 좀 굉장히 감상적일 수 있다. 안개가 짙게 낀 상태로 며칠을 보내면 이런 기분이 들 것이다. 실제로 곡을 연습하는 요 며칠동안 나의 기분은 상승과 저하를 반복했고 자기전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이 멜로디가 떠올라 내가 하는 모든 행위의 배경음악이 되어버렸기에 나는 실제보다 현실을 감상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곡은 내가 느끼는 모든 센티멘털한 감정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기억을 헤집어보면서 적용할 만한 스토리를 찾는 것이 피아노 연주의 일부라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내 연주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각자의 기억을 헤집을 것이다. 각자의 감정으로 들을것이고 그것이 연주자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며 그렇게 서로 만들어낸 기억과 감정의 조합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곡이 끝날 것이다 라는 약간은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주자가 아니기에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아마도 내가 브런치에서 읽었던 글에 내 나름의 방식으로 반응한 경험때문이 아닐까. 그 마무리는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예술이란 것은 우리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돌아보고 다시 느끼게 해줌으로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https://youtu.be/GVP1HnTKl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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