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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분노

애초에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분노 때문이었다. 분노가 나를 다시금 일기장으로 이끌었고 옛 일기장에서 뭔가 느꼈다. 재밌구나. 오래 지난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재밌었다. 시간 없다는 핑계를 집어치우고 그냥 다시 쓰기 시작하자고 생각했고 어쩌다보니 블로그를 하게 됐다.


어떤 작가들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행들을 소재로 유머러스한 글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과 분노를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을땐 이미 어느정도 해소가 된 상태에서다. 한창 진행중인 불행과 분노는 일기장에도 차분히 쓸 수가 없다.
 
나는 어떤 성인이나 영적 지도자들이 자식을 낳고 직접 키우면서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면 과연 찐 성인의 반열에 오를만 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나의 많은 분노가 자식에 대한 기대와 그것의 좌절로부터 오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글로 이끈 그 분노는 삭은 듯 안 삭은 듯 마음 깊은 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다. 스트레스란 자신이 가진 생각의 틀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틀을 아무리 탓해봐도 결국 상대가 잘못한 거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나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사람이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왜 자꾸 이런 나를 분노하게 하는가. 그 사람이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자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런데 아무말도 안하기가 쉽지가 않다.
 
한편 내 자식이니 뭘 잘못해도 힘빠진 모습을 보면 측은하다.
 
어쩌면 이것은 분노가 아니라 답답함일 수 있다. 저래서 세상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과 왜 아직까지 그것도 못해서 나한테 필요없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주는가 하는 답답함.
 
내가 부모한테 한 일을 되돌려받는 법칙이라도 있나 하며 엄마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엄마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럼에도 엄마는 나에게 한번도 분노를 표출한 적이 없다. 이모들과 얘기하며 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아직도 나한테 미안해한다. 이혼이란 결정, 그로 인해 딸이 어릴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나는 내 어리석음에도 비난받지 않았던 것이 엄마의 그 미안함 때문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나는 엄마의 돈을 고마움 없이 받아쓰면서도, 숱한 결정의 번복으로 괴롭게 했음에도 엄마가 나에게 뭔가 해줄수 있다는 것이 엄마 마음의 짐을 덜어줄 걸 알았다. 그러니까 약간의 거래였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지금은 후회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분노를 삭이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차라리 바운더리를 정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진 해줄 수 있지만 더이상은 안돼, 너도 성인이니 네 결정에 책임을 져라. 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럼으로서 나도 어느 부분까진 포기하고 어떤 부분은 지키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내 마음이 그러고 싶다고 해도 선을 그을 건 분명히 그어야 그 사람에게도 좋다. 
 
나는 이런 생각들이 옳은지 아닌지 모른다. 사람에겐 그 사람만이 아는 사정이 있다. 
 
위안을 받으러 피아노로 어서 옮겨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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