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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계절 감각, 기후

이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게 가을인 모양이다.

왠지 뉴질랜드의 가을은 가을답지가 않다.

한국의 가을은 왠지 센치해지고 허무해지는 맛이 있다면

여기의 가을은 안도감이다. 이제 그만 덥겠지..하는.


새로 이사온 집의 이층은 아침과 저녁때쯤 무자비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특히 저녁에는 서쪽 블라인드를 미리부터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면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온 이층에 퍼지게 된다.

아침에는 동쪽이 말썽인데 일어나 블라인드를 열면 아주 밝은 그리고 뜨거운 햇빛이 이제 열어주냐며 대기하고 있다.


나는 이 집에 이사와 저절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일찍부터 너무 밝기 때문이다. 미라클 모닝이란 책도 해결해주지 못했던 나의 늦잠과 게으름이 집을 옮긴 것만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나는 기뻐해야 한다. 왜냐면 일찍 일어난 덕분에 이제서야 충분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책을 읽어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글을 쓰는 것은 여간 동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무튼 여긴 그렇게 여름이 덥고 뜨겁다. 햇빛이 비추면 뜨겁고 그늘은 춥다. 이 기후는 사람들과 동물들마저 느슨하게 만드는, 여유있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는 것 같다. 햇빛은 눈부시고 아름답다. 나무와 풀과 꽃 열매는 자신의 역량 최고로 자라난다. 새들의 먹거리 (각종 영양가 풍부한 벌레들..)가 많다. 잔디라도 깎는 날이면 숨어있던 먹이가 더 잘보이는지 잔디밭에 새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보다 어슬렁거리는 새들을 더 많이 마주친다. 공작도 이 동네 주민처럼 돌아다닌다. 아무튼


뭔가 걱정이 없게 만들어주는 이 기후, 겨울에도 그닥 춥지 않고, 일교차는 크지만 계절차는 별로 없는 이 기후, 비가 와도 반갑고 내리는 비가 너무 예쁜 이 기후, 물론 뉴질랜드 전역이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오클랜드가 그렇다는 것이다. 


남섬에서도 더 남쪽 지역에 살때는 춥고 비가 자주 오며 거기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일 년쯤 지나자 miserable 한 날씨와 향수병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딸은 학교다닐때 겨울에 자주 울면서 돌아왔다. 춥고 비바람에 젖은채로, 머리카락은 얼굴에 다 붙고 볼은 빨갛고 옷과 가방이 젖어 황폐해진 모습으로 빨리 오클랜드로 이사가면 안되냐며 눈물로 호소했었다.

춥던 날씨가 더 추워지고 미친 바람이 불어 이상해서 뉴스를 보면 남극에서 무슨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남쪽은 남쪽의 아름다움이 있다. 길지 않지만 눈부신 봄날이 있고, 아름다운 여름날이 있다. 그건 인정.

무슨 얘길 하려다 여기까지 왔을까.


지금 여긴 선선하다.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이다. 크리스마스도 여름이다. 계절의 감각과 달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뉴질랜드에 살지만 마음은 한국에 살고있는 것 같은 나는 두 계절을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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