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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고양이, 명상, 배반

명상을 했다. 명상은 하면 할수록 편해지는 기분이다. 적절한 음악이 있을때 더욱 쉬워지는데 그저 눈을 감고 잠시 앉아있는 걸로 충분하다. 또는 눈을 살짝 떠도 된다. 세상을 조율한다고 생각해보자. 밖에서 차소리가 들리고 매미가 운다. 이웃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집은 조용하다. 나는 눈을 감고 세상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조금씩 틀어진 곳을 바로잡는다. 사랑을 보낸다. 나 자신에게도, 세상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보낸다.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지금 나와 같은 사람인가. 잘 모르겠다. 알수없다. 그 사람의 고통도 이젠 멀게 느껴진다. 그 사람의 밝음도, 그 사람의 영리함도 이젠 잘 모르겠다. 그 일이 누구에게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그게 나라고? 그런 일을 연기했던 배우들과 그 무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앞에 이 무대는 새로이 연극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이제 이 배우는 명상을 한다. 집안을 정리한다. 고양이가 순찰을 돈다. 다른 고양이들이 쫒겨난다. 고양이는 잠시 창문앞에 서 있다가 인기척이 없자 돌아간다.


마치 포위된 느낌이다. 고양이는 하루종일 집 주변을 돌아다닌다. 가끔 간식으로 뭔가 던져주었더니 매일 와서 확인한다. 나는 이제 그 고양이와 거리를 두려한다. 왜냐면 저번에 창문을 훌쩍 뛰어넘으려했기 때문이다. 이집은 셋집이고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게 계약된 집이다. 고양이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리면 곤란하다. 부동산 에이전시가 집안에서 고양이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고양이가 내가 주던 간식의 기억을 잊어버리도록 가능하면 그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있는 것이다. 얼마정도면 잊어버릴까. 오늘이 사흘째다. 아직 안 잊어버렸다. 방금도 왔다 갔다.


어제 저녁때쯤 옆집에서 먹이를 줬는지 그 고양이가 사료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러고나서는 우리집 앞마당 나무그늘에서 한숨 길게 잤다. 먹는데 에너지를 많이 썼나보다. 이 마당에 나타나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이 고양이는 당당하고 또 제집처럼 편안하다. 이 동네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이 집에 살기 전엔 그 고양이를 아꼈지만 정작 여기로 이사오고 나서는 더욱 멀어진 느낌이다. 멀어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주차장 앞에 철푸덕 누워 잠을 자고 있으면 차를 뺄 수 없기에 그 고양이를 멀리 유인해야한다. 잘 안비키기 때문이다. 문을 열면 들어오려 시도하기 때문에 그를 따돌려야 한다. 먹이를 주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계속 줘야하므로 자제해야한다. 


나는 세상에 사랑을 보낸다고 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쉽게 거두는, 조건에 따라 변심하는 그런 하찮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요즘 내 마음을 살짝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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