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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옆집 여자분과 회색 고양이

옆집 여자분은 이층 창문으로 힐끔 봤던, 집없는 회색 고양이에게 줄 사료캔을 뜯는 쿨한 모습과는 달리 친근한 인상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남편과 산책을 나가다가 그렇게 이웃과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오후 다섯시즈음, 쓰레기통에 뭔가를 버리러 나오는 것이 하나의 일과인듯 하다. 여자분이 쓰레기통 뚜껑을 열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안, 회색 고양이는 앞에 뭔가를 기다리듯 앉아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그녀가 저녁에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모양이다. 그 시간대쯤 그 집 마당에서 두 칸짜리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캔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회색 고양이의 모습을 보았다.

 
hello 하는 목소리가 힘있고 정겹게 울린다. 곧이어 how are you? 가 뒤따른다. 나는 두 번째 만남에서 이 패턴에 적응하여 how are you? 에 곧 good, how are you? 하고 대답한다. "I'm good" 그리고 정적, 나는 휘적휘적 집에 들어온다. 도무지 이 인사 끝엔 무슨 얘길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주는 사료를 다 먹은 고양이처럼 돌아선다.
 
이 집에 이사온지 어언 4개월, 전 세입자는 우리 이웃이 사모안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여자분이 저 회색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준다고 했다. 사실 그녀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그 고양이 밥을 챙겨주며, 자신은 주지 않는다고 했다. 고양이가 spoiled 되었기 때문에.
 
고양이는 우리 앞마당 나무 밑에서 시도때도 없이 잠을 자고, 자주 우리 뒷마당에 출현한다. 우리 뒷마당을 자신의 영역으로 지정한 듯 목숨걸고 다른 고양이들을 쫓아낸다. 아침에 나와 눈이 마주치면 뭔가 달라고 야옹거린다. 그러면 뭐라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마트에서 사놓은 간식을 주면 엄청나게 잘 먹어버린다. 하지만 버릇없는 고양이는 아니다. 더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는다 (더 주면 당연히 잘 먹는다).
 
나는 옆집 여자분을 만나기 전에도 이미 호감은 갖고 있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몇 년 동안 챙겨주는 분이라면 아마도 책임감이라든지 다정함, 연민을 느끼는 능력이 있으신 분일거라 추측했다. 그것은 생각보다 큰 책임감을 요구할 것이다. 요즘과 같은 인플레이션에도 고양이는 사료값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고 관찰 결과 동네 사람들은 간간이 뭔가를 챙겨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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