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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정보 가축의 행복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병철씨의 강연을 접했다. 독일에 거주하는 철학자로, 모교인 고려대에 근 40년만에 방문하여 강연을 하는 영상이었다. 피로사회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이 분은 여기 뉴질랜드에서도 유명한지 검색하면 찾는 책이 없기가 일쑤인 오클랜드 도서관에도 그의 책이 상당수 존재한다. 몇 권 빌렸지만 글씨가 너무 작고, 무엇보다 영어로 철학서를 읽기가 쉽지 않아서(그래도 쉽게 쓰인 편 같음..) 다시 고이 반납했었다. 아무튼 평소에 관심있던 철학자라 짧지 않은 길이의 영상이었지만 재밌게 다 봤다.


한병철씨는 행복에 관해서 얘길 했고,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일로 정원일과 피아노 연주하는 일을 꼽았다. 글을 쓸때는 날개달린 기분이라고 했다. 날개달린 기분으로 글을 쓰다가 '날개'(독일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부르는 단어의 뜻이 '날개'라고 한다)로 가서 피아노를 치다가하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손수 땅을 파서 정원을 만드는 일은 그저 손가락만으로 스마트폰을 스크롤해 정보를 뒤적거리는 일보다 행복하다고, 현대인들은 정보의 가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저항하려하지 않는가. 착취과정에서 억압이 아니라 오히려 쾌락을 느끼고,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아노도 손가락만이 아니라 손과 몸을 다 써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원일 만큼이나 인간에게 행복을 준단다. 저항감 없이 스마트폰 화면에서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는 것만으로 여러가지를 해결하는 활동은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변화시키며, 좋아요 좋아요를 반복하는 행위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즉 행복은 수작업이며 저항감이 있어야 한다(?)고 한 것 같다.


사실 저항감이란 부분에선 잘 이해되지 않지만 한때 직접 텃밭을 일구고, 오랜기간 피아노를 취미로 했던 입장에서 그 활동들이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바느질, 뜨개질이나 도예등도 그랬다. 다만 텃밭에 잡초들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무성히 자라날때쯤엔 내 텃밭이지만 외면하고 싶었고, 피아노를 연습할 때 어려운 부분이 나올때면 한숨이 나왔다. 그래, 그런 일련의 저항감들을 뚫고 뭔가 만들어내는 경험, 시간을 쏟고, 열정을 들이고, 몸과 손을 직접 써가며 하는 활동들이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오랫동안 피아노 연습을 쉬다가 한병철씨 영향으로 다시 베토벤 소나타를 쳐보는데 손에 힘이 많이 빠졌지만 동시에 마음에도 잘쳐야한다는 생각이 많이 흐려졌기에 아름답게 들릴수 있었다. 비창 소나타인데 중학교때 처음 접했던 그때와는 달리 멋있게 치려는 마음도 힘들여 치려는 생각도 없고 그저 평온하다. 아주 느리게 치면 기본적으로 그렇기도 하다.


아무튼 한병철님의 강연으로 역시 내가 손으로 하는 취미들을 좋아해온 것이 행복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느끼며 하루종일 한병철님의 책과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우린 정보의 가축이야를 되뇌이며.. 따지고 보면 이런 좋은 강연을 만나는 것도 정보의 홍수속이라는 게 참..


한병철님은 정원을 가꾸고 피아노를 치고 글을 쓰는데, 나는 그의 책을 읽는다 - 어떤 사람은 행복감을 주는 일로 직접 뛰어드는 동안 나는 그것에 대한 책을 읽는다?  청소를 하기 전에 청소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쓰기위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는 등 뭔가 하려면 일단 책부터 뒤적거리는 게 내 습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책을 읽는 동안 그 순간에도 한병철님은 정원을 가꾸고 피아노(그랜드 피아노가 두 대!!나 있다고 한다)를 치고 있을 생각을 하면 아마 약간 약이 오를 수도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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