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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꽃, 프레디 머큐리

내가 힘들때나 여유가 없을 때에도 일기라도 꾸준히 썼어야 했다.

기억들은 소중하고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어떤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손등을 보니 잔주름이 늘어나 있다.

어렸을때 보았던 할머니의 손처럼은 아니다.

고생하신 엄마의 손도 아니다.

그저 가끔 피아노를 치고, 힘들지 않은 일을 해온, 그런 손이다.

팽팽함이나 윤택함은 없지만 어느정도 편한 삶이 그려지는 손이다.


나는 지금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어떤 주변 동네, 셋집에서 이 글을 쓴다.

월세가 높은 월셋집이다.

잔디와 장미꽃이 핀 정원이 있다.

작은 정원이지만 뿌듯함을 준다. 나는 꽃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여성성을 부여하고는 맨날 '예쁜 우리 꽃들~'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흠칫 놀라서

이번에는 이 꽃송이들이 자신의 젠더를 남성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꽃들에게 분명 끔찍할 수 있다.


나는 이제 그 장미꽃들 하나하나에 내가 좋아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얼굴을 대입해 본다.

그러면 부케처럼 늘어진 장미꽃다발 하나에도 여러개의 프레디 얼굴이 달리고 그것들은 무표정인 듯 보여도 기뻐한다.

나는 나의 장미들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안녕, 그냥 꽃들아.


이제 이름을 알수 없는 구근 식물의 줄기에서 매일같이 뻗어나오는 하얗고 말간 꽃들의 얼굴도 늠름해 보이기 시작한다. 늘어진 줄기는 근육질의 팔로 보이기도 한다. 멋있다.는 찬사를 보내본다.

내가 봐주는 대로 저 아이들은 되는 걸까.

실없는 생각을 오늘도 한다.


나는 현관 앞뜰의 터줏대감인 드래곤 모양의 형상에게도 (아마도 이무기인듯)

볼때마다 용이라고 불러주기로 한다.

뱀이라고 하면 뱀이 되고 용이라고 하면 용이 될수 있다는 이무기의 특성상 아마도 내 말에 영향을 받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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