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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수프, 치아바타, 잼

아침, 수프를 끓이다가 든 생각.

아, 이렇게 수프를 끓이고, 빵을 굽고, 잼을 만들고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뜨개질을 하고
 
정원을 가꾸다가
 
고양이도 키우다가
 
그렇게 살다가 가도 괜찮겠다.
 
세상에 아름다운 건 널려 있으니
 
나 하나쯤 뭔가 하지 않아도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잘만 흘러가는 세상
 
죽을때 내가 뭔가 했다는 자부심은 없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행복하게 소소하게 그냥 그렇게 살았다고 해도 될까.
 
 
코로나로 몸져 누운 며칠동안 그 전에 장봐둔 샐러리가 냉장고 안에서 뭉그러지고 있었다.
 
샐러리 중에 건질만한 몇 개를 씻고 당근과 양파를 작게 깍둑썰었다.
 
무작정 수프를 끓이자고 생각한 것이 결국 미네스트로네가 된 것 같다.
 
감자와 소고기 간 것, 토마토 소스, 수프스톡 한 개를 넣었더니 그렇게 됐다.
 
(기억속에 남아있는 유아시절 먹어봤던 거버 이유식 맛이 나는 것 같다. 작은 병에 들어있던. 누군가 선물로 사왔거나 했을 것이다. 우리집은 그렇게 부유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맛은 신기하게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아마도 퍽 좋아했던 듯)
 
나에게 수프를 만드는 일은 내 몸과 마음을 사랑하는 일이다.
 
가족이 아닌, 나를 위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드는 일이다.
 
나 말곤 특별히 수프를 즐기지 않는다.
 
한 때 만들곤 했던 치아바타를 다시 굽고 싶다고 생각한 건 날씨가 쌀쌀해져서인지도 모른다.
 
갓 만든 달콤한 잼을 올려 먹고 싶다.
 
별 것도 아닌 일들이 삶에서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프와 빵의 온기, 잼의 향 이런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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