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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6. 2023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그녀는 X 등급 영상을 보고 글쓰기가 그걸 볼때의 느낌을 일으켜야한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생소하다. 그녀의 글쓰기가 나의 마음에 생소함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에르노를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읽어보았다. 오클랜드 도서관에 신청을 걸어두고 생각보다 일찍 내 차례가 와서 읽을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의 글을 영어로 번역한 것, 얼마나 잘 번역되었는지는 모르나 프랑스어를 영어로 옮기는 것이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보단 수월할 거라 믿고 읽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을 읽은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인 모양이다.


영어로 된 글을 읽는 것은 익숙치 않기에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느낀 그 첫 장면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여기에 영어 문장 그대로 옮겨보겠다.


It occurred to me that writing should aim to do the same, to replicate the feeling of witnessing sexual intercourse, that feeling of anxiety and stupefaction, a suspension of moral judgement.


글을 쓰는 것은 성교를 목격하는 느낌, 불안과 충격, 도덕적 판단의 중단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파파고 번역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얼핏 본 것 같았다. 책은 예상보다 얇았다. 마음 가볍게 읽을 수 있을만한 정도, 영어 수준도 다른 책들에 비해 그닥 어렵진 않았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기에 중립적인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처음부터 파격적인 글, 글쓰기에 대해 든 작가의 생각이 줄곧 물음표를 던졌다. 포르노를 볼때 느끼는 기분이 글쓰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신선했다.


책을 중간쯤 읽어내려가다가 조금 알 수 있을 듯 했다. 내가 그녀의 글을 읽고 그런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정성때문에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 내 기준에선 선정적이라 느낄만한 부분은 아무데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없었다(뭔가 기대하고 있었나). 다만 그녀는 그저 가감없이 글을 쓰는데 그걸 보는 내 선입견과 판단이 마비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불륜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러니까 벌써 나쁘다 좋다 하는 판단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연하의 유부남에게 열정을 느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게 자전적이라면 내가 굳이 왜 읽어야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은 읽어가면서 굳어지기 시작했는데 내가 문학이나 소설에 대해 품고 있던 환상 - 문장이 아름다워야 한다, 사실을 쓰더라도 어떤 각색이나 장치가 필요하다, 평범한 블로그 글이나 일기와는 달라야 한다는 등의 선입견에 의거하여 나는 약간의 실망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읽을까 말까 하다가 알라딘에 그 책이 이북으로도 나왔는지 검색했다. 차라리 한글 번역으로 읽으면 낫지 않을까해서.


알라딘 책 소개페이지에서 그녀의 글은 자전적이며, 지금까지 그래왔고, 그걸 옹호하는 입장이란 걸 알았다. 한 사람의 경험은 결코 그 한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일 수 없다는 그녀의 생각이 왠지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글을 쓸때,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알리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 읽는 이들중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또는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소설이 어느정도 가공된 경험만을 쓴다면 날 것의 목소리는 수필이나 일기에서만 들어야하는가?


아무튼 나는 다시 책의 남은 부분으로 돌아갔다. 영어라서 그런지 그녀의 문장에 특별함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실하게 줄곧 서술하고 또 서술하는 그 방식에 새로움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철저히 열정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글이 불러일으킬 반향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음을 또한 드러낸다. 나는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하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계속 읽었다.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때쯤 읽기를 지속해온 보람을 느끼는 구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녀라면 날 것 그대로를, 적어도 덜 가린 무언가를 내어놓았을 것 같았기에, 한편 내가 그런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보고싶어해도 되는 것일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진정 알고 싶은것인가, 삶의 맨 얼굴을. 나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용기내어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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