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쓸 수 있을까. 너무 대단한 것 앞에선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나는 어제와 그제, 다시 한번 임윤찬의 라흐 피협 3번을 듣고 급기야 엉엉 소리내어 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시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적어서 눈으로 보고 밝혀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했을때 처음 본 그 영상이다. 남편과 나는 듣다가 똑같은 부분에서 같이 울컥해버렸다. 그 이후로도 그 부분만 가면 울컥하여 눈물이 맺히곤 했다. 놀라웠던 점은 임윤찬이 연주하는 도중에 마음에서 마음으로 음악을 건네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인데 그런 느낌을 실제 연주회에 가지 않아도 받을 수 있다는 건 어찌된 일인지. 그게 가능한 걸까. 그리고 쭈욱 들어나가는 동안 결국 그 3악장 마지막으로 치닫는 부분에서 기어이 울컥하고야 마는 것이다. 몇번째 들으니 이제 3악장만 되면 울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부분이 어딘지 지금까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딱히 알수도 없었는데 어제 다시 듣다가 알아냈다.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는 구간이 아니다. 그 구간은 놀라움과 흥분이 뒤섞여 고조되는 부분인데 정작 울컥하게 되는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짧은 하강의 구간이다. 뭐랄까,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구간. 절망은 아닌데 뭔가 득도하는 순간이랄까. 그래 이렇게 해도 안되면 할 수 없어, 할 만큼 했다 라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나선 무엇이 남아있을까. 기왕 이렇게 된거 맘대로 해보자.. 끝까지 가보자..이 순간을 그냥 즐기자.
남편은 이 마지막 부분에서 작곡자의 고뇌가 느껴진다며 연신 눈물을 훔쳐낸다. 나는 집에서도 틈만나면 일을 하는 남편을 쉬게 하기 위해 같이 음악을 듣자고 한다. 기왕이면 긴 걸로. 남편도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피협으로.. 가끔 2악장에서 잠시 졸기도 한다. 그래도 1악장과 3악장은 챙겨본다. (사실 2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아무리 봐도 작은 실수같지만 전체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남편은 작곡과 출신이다. 나는 임윤찬의 연주에 뻑이 가있는 동안 남편은 작곡자의 고뇌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
어젯밤,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 3악장부분을 홀로 듣고 나서 화장실에 들어가 엉엉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을 감사했다. 이런 연주자가 있고 그걸 유튜브로 간편히 볼 수 있는 세상, 이런 멋진 음악을 이런 연주로 감상할 수 있는 특권, 내가 이런 음악가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어서 이걸 보게 된 행운.. 동시에 나는 뭘했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임윤찬의 연주가 나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사랑하고 의지하던 시절을 상기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 연주는 나에게 그 열정의 시기를 돌아보게 만든다. 순수함, 그것은 예술가의 제 1덕목이 아닐까.
https://youtu.be/DPJL488cfRw?si=_7EC1arGHvgocAo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