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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Sep 11. 2023

고잉 그레이

코로나 락다운을 틈타 고잉 그레이를 선언했다. 맘 편히 흰머리가 되겠다고, 오랜세월 지속해온 염색을 그만두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어차피 아무도 만나지 않는 김에. 거리의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걸리는 거라면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과 급우들인데 혹시라도 아이들 학교에 갔을때 누군가 아이에게 너희 할머니냐고 묻는 그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특히 아들은 자존심이 쎄고 부모와 함께 보여지는 일에 부담을 가지는 것 같다. 뉴질랜드에 온 이후로 나는 이미 부모의 국적이라든가 자동차가 아이들로 하여금 신경쓰이게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걸 알아챈 적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 대학가기 전까지만이라도 꾸준하고 정교한 염색을 유지하고 싶었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일찍 내 자신에게 오랫동안 생각해온 자유를 선물하자고 맘 먹게 된 것이다. 학교에는 당분간 남편만 보내기로 했다. 한 일 이년만 더 하면 되니까.


정수리쪽 흰머리가 그 아랫쪽 염색머리와 조화를 이루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런 날을 대비해 진갈색으로 하던 염색을 서서히 밝은 갈색으로 바꿔 온 터라 대비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나의 흰머리 갯수가 크게 늘어나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 보이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인데 특히 사진을 찍거나 영상통화를 할 때면 필요 이상으로 윗머리가 하얗게 반사되어 어머님들의 걱정을 사고 핀잔을 들어야 했다. 사실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는 내 모습은 나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영상통화를 더욱더 기피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도 엄마도 이모들도 내가 아는 모든 연세드신 분들이 아직도 정갈한 염색머리를 유지하고 계신 마당에 내가 나 혼자 좋자고 이러는 건 도리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특히 우리 엄마는 자신이 자신의 남편과 함께 이 이른 흰머리 유전자를 물려준 장본인이면서도 나의 달라진 모습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딸이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질까봐, 정확히는 이러다가 버림받을까봐 걱정하시는 듯 했다. 다른 걸 떠나 딸이 엄마보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모습을 보여드리는 건 불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편안함, 자유로움, 뭔가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이 편함을 한번 경험하고 나니 이것은 내가 무엇을 희생하더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처음엔 검은콩을 먹으면 검은 머리가 다시 나냐는 둥 이상한 소릴 하긴 했으나 내 의지가 너무 굳건하여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인다. 남편이 반대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이 사람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일에 반대를 잘 안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모르는 이들의 시선은 중요치 않았지만 가끔 황당한 일은 있었다. 가령 남편이랑 마트에 가면 내가 남편의 엄만줄 안다든지,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르면서 “you look so young~~!!” 한다든지 하는 일들. 그럴땐 영어로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내비둔다.


요즘엔 염색머리부분이 머리끝에 살짝 남아있는 정도라 점점 더 맘에 든다.


뿐만 아니라 다시 피아노 연습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지금, 한 인간이 피아노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천착하게 되면서 나의 희고 까만 머리카락은 마치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처럼 생각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저 질문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며 외적인 것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고 오히려 내적인 부분만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디까지 자기만족에 젖어 살 수 있는가. 사실 친구들에게도 영상통화를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나는 그들의 반응이 내심 두렵기까지 하다. 나는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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