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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Oct 11. 2023

딸아이가 남친과 지내기 위해 잠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을 빼고는 쉴새없이 돌려대던 미싱이 멈췄다.

그녀가 좋아하던 음악소리도 멈췄다.

시간도 멈춘것처럼 열린 방문사이로 방은 아무 변화가 없다.

간지 하루만에 남편에 의해 깔끔히 정리된 방.

바닥에 무수했던 패턴지와 천조각들, 잔 먼지들이 제거되었다.

옷장에는 미처 가방에 쓸어담을 수 없었던 옷들

의자위에는 잠옷과 가운이 걸쳐져 있다.

그 방 앞에만 가도 딸의 향기가 난다.

썼던 향수와 헤어제품들의 냄새인것 같다.


욕실에 있던 비타민 씨 세럼과 헤어에센스는 내가 챙겼다.

가기전에 픽싱 쿠션인지 하는 화장품을 두 개 주고 갔다.

화장을 잘 안하지만 한번 써봐야겠다.


내년쯤 이쪽으로 학교를 오게 되면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하겠다고.

남자친구가 부모님 걱정하신다며 우리와 영상통화를 신청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남자친구는 내 눈엔 딸과 똑같이 어려보였지만

그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더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랄까.


딸은 그와 함께 있으면 공기중에 행복이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했다.


몇 개월전 그녀가 뉴질랜드로 돌아왔을 때

딸과의 재회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갑자기 늘어난 집안일로 나는 조금 힘에 부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식성은 모두 달라

한 사람의 취향을 다시 반영하느라

또 한 사람의 시간대에 나의 삶을 맞추느라

나자신에 집중할 시간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딸은

사춘기를 벗어나기도 했고

독립해서 살았던 경험때문에

훌쩍 성장해있었다.

조용했던 집에 신선한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딸은 못받은 분량만큼의 사랑을 받으러

돌아온 건지도 몰랐다.

나도 더 성숙한 사랑을 표현하려 애썼다.

딸의 눈에 비쳤을

지난날 나의 미숙함과 과오들을

지우개로 박박 지우진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어머니다운 모습으로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녀보다 하수다.

그녀가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던

남편은

딸이 떠나고 나서

딸이 없으니까 약간 이상하다고 한다.

자식이 잠깐 집을 떠나도 이렇게 이상한데

하며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평소에 딸과 데면데면한 남편이 이럴땐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딸이 한국에서 독립생활을 할 때도

보고 싶다고 말해서 놀라웠었지.

‘걱정하지마, 금방 와’ 내가 말하니

웃는다.

그러나 우리 둘다 확신을 갖지 못한다.


표현능력에 손상을 입기라도 한 것 같은

우리 부부밑에서 자라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딸아.

우리 모두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허락된 걸까.

다시 웃고 떠들 날이 얼마나 남아있는 것일까.


딸을 보내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딸의 방에 들어가

이불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불커버와 베게커버 잠옷을 말아두고

이불솜부터 세탁기에 넣었다.


종잡을 수 없는 뉴질랜드의 날씨답게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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