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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Oct 09. 2023

치킨

일요일 저녁, 다음 한 주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집에서 뭔가를 만들어먹기 보다는 사서 먹고 싶었다. 가족들 누구도 특별히 먹고픈 것이 없어 궁리끝에 생각해 낸 것은 치킨이었다. 남편은 평소 가던 가게가 아닌, 새로운 가게에 가보자고 했다. 리뷰는 환상적으로 좋았다. 그에 반해 나의 직감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애써 무시하고 그 가게로 출발했다.


겉에서 보고 맛집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일요일 저녁 시간치고 가게의 분위기가 휑하다. 넓은 가게에 가족으로 보이는 한 팀이 있었을 뿐이다. 배달 주문이 많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들어간 가게에는 주인 내외분으로 보이는 두 분이 한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있었고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두리번거리며 들어가는 동안에도 그 두 분은 아무런 인사도, 우릴 본 기색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 가게가 한국인이 하는 곳임을 미리 알고 갔다. 그 두분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는 듯이 카운터쪽에 직원이 나올거라고 손짓과 눈빛과 말로 우리에게 신호를 주었다.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니 과연 직원이 나왔다. 우리는 또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그가 한국인처럼 보여서이기도 했고 한국인 가게에 온 것만으로 적어도 한국 인삿말은 알겠지 했던 것이다. 그분은 약간 당황하며 뭐라고 말했다. 주문할 거냐는 뜻인 것 같았다. 나보다는 좀더 그쪽에 가까이 있었던 남편이 알아듣고 주문을 한다. 한국말로. 이것저것. 자세히 들어보니 그분이 하는 말은 한국말이다. 그런데 약간 물 흐르듯하고 조금 힘빠진듯한, 알아듣기 힘든 웅얼웅얼하는 발음이다. 그러나 필요한 말은 다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순간 중국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못 알아듣는 가운데 남편은 잘도 알아듣고 주문을 한다. 몇 번 네? 하고 되묻는 과정을 포함해서. 모든 주문을 끝내고 나자 여기서 먹는지 takeaway인지 묻는다. 우리는 집에 치킨을 가져가서 먹을 생각이다.


주문을 끝내고 테이블에 앉으면서 남편은 그 직원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나는 그 말을 누군가 들을까 염려되었다. 우리는 영어를 쓰는 나라에 살면서 한국말을 쓰면 우리만 알아들을 거라는 이상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여긴 한국가게이고 저쪽에 한국인 사장님이 계시고 한국말을 하는 직원이 있는데? 못 들었길 바란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가게에선 비릿한 냄새가 났다.  전체적으로 냉랭한 분위기와 활기 없음에 나는 왠지 모르게 치킨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러는 동안 문득 의자들에 시선이 갔는데 뉴질랜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끈으로 묶는 방석이 적지 않은 숫자의 테이블 의자마다 곱게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배려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저쪽에 앉아계신 사장님들을 한 번 쓱 쳐다보았다. 하얀 모자와 앞치마, 마스크를 착용하셨다. 두 분은 어떤 장부를 놓고 의논을 하고 계셨는데 내 눈에는 뭔가 가격적인 부분을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다시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자 이번엔 테이블 위에 깔린 투명한 플라스틱 덮개가 눈에 띈다. 나무 테이블 위에 플라스틱 덮개, 이것은 중국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식탁보호용 비닐 같은 것이었다. 왜 테이블을 그대로 노출시키지 않고 이걸 사용하는지는 몰라도 뭔가 편리함과 유용성이 있는 모양이다. 나무 테이블도 충분히 코팅은 되어 있는데. 하며 둘러보자 역시 모든 테이블에 그 플라스틱 식탁보같은게 깔려있다.


어.. 나는 나의 선입견과는 달리 치킨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무언가 관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기에. 무언가 고집과 통일성에 대한 집념을 엿보았기에? 잘 모르겠다. 이번엔 가게 전면 유리창 밑 테이블에 놓인 화분에 눈길이 간다. 이 가게에는 조화 화분이 몇 개있었지만 저 화분은 생화이고 흔히 볼수 없는, 봉오리가 밑을 향한 종모양의 붉은 꽃이며 수술같은 것이 삐죽 나온 모양새다. 연약하고 가느다란 줄기가 나름 멋지게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나는 다시한번 사장님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번엔 여자 사장님을 주목한다. 사장님은 기침을 콜록콜록 하신다. 감기라도 걸리셨나. 이번에도 고민이 많은 표정이시다.


나는 우리 치킨이 맛있길 바란다.


우버 이츠 기사들이 하나둘 들어와 포장 배달 치킨 봉투를 가져나간다.


한구석의 테이블에선 대략 다섯명의 가족이 뭉쳐 앉아 치킨을 고대하고 있다. 아들로 보이는 세 명이 있었다. 아이들이 치킨을 좋아해서 온 건가. 나는 우리집 상황에 대입하고 있다. 우리 아들은 치킨을 매우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한 팀의 손님이 들어온다. 웅성웅성하는 소리. 카운터로 간다. Are we gonna eat here? Yes. 그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왔을까. 구글 리뷰의 높은 별점을 보고 왔을까.


우리의 치킨이 드디어 나왔다. 아까 그 직원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는 한결같고 나는 한결같이 못알아듣는 가운데 남편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한다.  물론 중간에 네? 하고 되묻는 일도 반복된다. 그 직원.. 누군가는 그의 표정을 비웃는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분명 웃고 있는데 눈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집에 와서 치킨 상자를 열어보니 후라이드는 크리스피하고 허니 갈릭 치킨은 흐물흐물했다. 딱봐도 절반의 성공이다. 허니 갈릭이 흐물한 이유는 아마도 겉면에 발라진 소스의 작용인 것 같았다. 닭고기는 신선했다.


자기전, 치킨 가게와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는 나의 선입견과 판단들을 본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으로, 나의 경험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는 나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흠칫 놀랐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딜 가든, 누굴 보든 나의 모습밖에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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