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을 검색한 건 피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채소와 식초가 건강에 좋다길래, 정확히는 혈당 스파이크 방지에 도움이 된다길래 매번 따로 챙겨 먹느니 피클을 담그면 간편하겠다 싶었다.
한국책을 배송시키려면 돈도 들고 오래 걸리니까 일단 영어책으로 보자는 생각으로 오클랜드 도서관 사이트에서 도서검색을 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도서검색 결과는 예상대로 내 의도와는 조금 다르지만 왠지 받아들이게 되는 여러 가지 결과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피클과 동화책이 연결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금 내 손에 쥐게 된 것은 Beatrix Potter 의 <The Tale of Ginger and Pickles>, Ross Murray 의 <Muki and Pickles> 라는 두 동화책과 그리고 애초에 목적이었던 피클 요리법이 수록된 <the modern preserver> 라는 요리책이다.
일단 책도 작아 만만한 진저 앤 피클스를 속독했다. 아이들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특히 retail business 부분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사실 아이들이 이런 냉혹한 현실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상업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도 있고 말이다.
게다가 고양이와 강아지가 주인인 가게에 토끼와 쥐들이 손님으로 와서 주인을 무서워하는 광경은 누가 봐도 유머스럽다. 입에 침이 고이면서도 손님을 잡아먹을 수 없기에 참아야만 하는 주인들의 심정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인심 좋게 외상을 퍼주고 수익이 없어 자신들이 파는 물건을 먹고 산다.
이후로 마을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베아트릭스 포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런 사람은 자신과 혼자만 있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내 주위엔 다양한 동물들이 없지만
있어도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할 수 있을까.
빨래를 널러 뒷마당으로 나갔다가 누군가 위에서 쳐다보는 느낌에 고개를 홱 돌리니 정다운, 그러나 경계심이 많은 줄무늬 고양이가 담 위에서 나를 쳐다보다 아닌 척 몸을 돌려 달아나려 한다. 나는 그 고양이를 쫓아버리고 싶지 않아서 얼른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남은 빨래를 건 후, 문을 닫으며 고양이에게 바이바이~~ 손을 흔든다. 아마도 그 고양이 - 이름은 루이, 주인들이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다 - 루이는 이 작별인사를 눈치챌 것이다. 나는 항상 이 인사를 끝으로 사라지곤 했으니까. 루이는 그걸 빤히 보고 있더니 안심하고 다시 배를 깔고 엎드린다. 루이. 귀여운 루이.
우리 집 주위엔 고양이뿐이다. 그리고 작은 벌레들.
루이. 너는 동화책의 주인공이 될 수 없어. 적어도 나에 의해서는 말이야. 슬프니?
루이는 아무 말이 없다.
그다음으로 읽기로 예정된 책은 <Muki and Pickles> 이것 역시 동화책. 그림과 색감이 너무 예뻐서 선택하였다. 이렇듯 나는 하려던 목적과는 가장 먼 일들을 주로 처리하는데 이번에도 과연 피클을 담글 수 있을런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