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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룩 KLOOK Aug 10. 2017

[1화/러브레터] 오타루, 항구도시의
러브레터.

영화와 여행, 무비무빙

 순백의 설원. 내리는 눈보다 더 하얀 피부의 얼굴을 가진 여자가 검정색 코트를 입고 누워있다.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발... ‘에흠!’ 하는 기침과 함께 여자가 콜록거리며 눈을 뜬다. 숨을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동안 가쁘게 숨을 쉬던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코트에 묻은 눈 알갱이들을 털어내고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 

 천천히 걸어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발자국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발자국을, 소리를, 시간을, 모든 것을 덮어 버릴 기세로 내리는 눈 때문이다. 한참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점점 작아져 간다. 저 멀리 보이는 집의 유리창 보다 더 작은 까만 점 정도의 크기가 될 때까지, 눈은 소리 없이 계속 내린다.  

 Q. 어떤 영화의 첫 장면일까요? (힌트 : 오겡끼 데스까~~~~)

 맞습니다. 정답은 러브레터죠. 러브레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본영화 중 하나입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 작으로, 한국에서는 1999년 11월에 개봉했었죠. 해방 이후 최초로 정식 극장 개봉한 첫 번째 일본영화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인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약혼자인 후지이 이츠키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사실 한 사람이 연기를 해서 헷갈리는 분들도 많더라고요)이 첫사랑의 비밀을 더듬어 가는 아주 따뜻하고 뭉클한 내용의 멜로입니다. 일본의 국민 여배우인 나카야마 미호가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츠키를 1인 2역으로 모두 맡아 연기를 했는데, 그 연기력에 감탄을 했었죠. 러브레터의 자세한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들도, 여주인공이 순백의 설원에서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오겡끼 데스까~~~와따시와 겡끼데스~~(잘 지내나요? 전 잘 지낸답니다)’ 라고 외치는 장면은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설원이 있는 곳, 영화의 전반적인 촬영이 이뤄진 도시가 바로 일본 북해도(홋카이도)의 항구도시인 오타루입니다. 


-오타루에 사셨어요?
-응, 그랬지. 
-오타루 어디쯤이요?
-이젠 없어졌어. 국도가 들어서면서 없어졌지.


 오타루라는 지명은, 약혼자였던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추도식을 마친 후 히로코가 이츠키의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자신의 약혼자가 과거에 오타루에 살았다는 걸 알게 된 히로코가, 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오타루의 풍경이 등장하죠.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조용한 항구도시인 오타루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영화와 함께 세계의 아름다운 여행지를 소개하는 무비무빙! 오늘 그 첫 화에선 오타루의 스팟(엄밀히 말해 오타루로 한정된 건 아닙니다. 오타루 근교의 마을까지 포함하죠)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1. 여자 후지이 이츠키 집

[ 小樽市 見晴町16-16]

 우체부가 언덕길을 열심히 달려 히로코의 편지를 전해주는 바로 그곳.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집입니다.  이곳은 삿포로에서 출발했을 시 오타루보다 4정거장 앞에 있는 제니바코(銭函駅)역에 내려서 도보로 12~15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원래 오타루에서 지정한 오래된 목조건물이었는데, 주인 할아버지(영화속 이츠키의 할아버지는 아닙니다)께서 촬영을 허락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집을 볼 수가 없습니다. 2007년에 촛불(?) 때문에 일어난 화재로 완전히 전소했거든요. 무척 아쉽죠. 하지만 그 터와 함께 이츠키 나무는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이츠키의 할아버지가 이츠키에게 이야기하죠. “네가 태어날 무렵 나무를 심어 그 나무에 이츠키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 나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츠키가 할아버지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 나무에요?” “그럼 이 나무?” 뭐 이러다가 영화가 끝나버리니까요.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집터에 남아있는 이츠키 나무는 자작나무라고 하는군요.


2. 남자 후지이 이츠키 집 ‘구 스하라 저택’

[北海道小樽市東雲町] 

 영화상에선 고베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집은 ‘구 스하라 저택’이라고 불리는 건물입니다. 이곳은 고베에 있는 게 아니라 오타루 시내의 키타이치가라스 3호관 맞은편 언덕에 있는 2층 목조건물입니다. 이 곳은 오타루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중의원의원이며 귀족원의원까지 역임한, '팥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잡곡상 다카하시나오지 씨가 1912년에 건축한 저택이라고 하네요. 그 후에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실업가인 ‘스하라 가’로 소유권이 이전됐다고 합니다. 1986년 12월 오타루시에 기증된 후 '구 스하라 저택'으로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1991년 7월 7일 '오타루시지정 역사적건축물' 제27호로 등록되었다고 하는 역사가 꽤 깊은 집입니다. 참고로 이 건물 맞은편에 있다고 얘기했던 기타이치가라스 라는 곳의 뜻은 ‘키타(北) = 북쪽’, ‘이치(一) = 제일가는’, ‘가라스(ガラス, glass) = 유리’입니다. 


3. ‘오타루 시립 박물관’

[北海道小樽市色内2丁目1番20号] 

 영화내용 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오타루의 건물입니다. 히로코와 아키바(히로코의 현 남자친구)가 오타루에 방문한 첫 씬의 배경이 된 장소죠. 이 장면에만 잠깐 등장하고 나오지 않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거리(디저트 샵, 유리공방 등이 있는) 근처에 있으니 한 번 쯤 들러 봐도 좋을 것 같네요. 1893년 건축된 꽤 오래된 건물로 옛 오타루 창고의 일부를 전시실로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타루의 자연과 동식물, 유적 외에 옛 시대의 물건과 잡화 등을 전시해놓은 것이 볼거리라네요.


4. 아키바가 일하는 유리공방 ‘더 글래스 스튜디오 인 오타루’

[日本 北海道 小樽市 最上2丁目16−16]

 히로코의 현 남자친구인 아키바가 일하는 곳입니다. 아키바는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절친이기도 했죠. 영화상에서는 고베에 있는 설정이지만, 실제로 이 유리공방은 히로코가 ‘오겡끼 데스까~’를 외쳤던 텐구야마 산 아래 버스 종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영화 속 유일한 키스신이 나오는 장소인 만큼 엄청난 낭만을 기대하고 가신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1층 작업장에서 직접 유리를 녹여 작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2층 쇼핑공간에선 다양한 유리 제품들을 판매하니 방문해 볼만 합니다.


5.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일하는 도서관 ‘구 우편선 오타루 지점’

[日本 北海道 小樽市 色内3丁目7−8]

 여자 후지이 이쯔키가 일하는 도서관입니다. 오타루 운하에서 서쪽으로 좀 더 가면 있는 곳 이죠. 그런데 도서관을 찾아 온 분들이라면 헤맬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노부부께서 운영하시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거든요.

 1906년에 2층 규모의 석조식 건물로 만들어진 이곳은 원래 일본의 3대 해운회사인 일본우선(주)의 오타루 지점으로 사용 됐었다고 합니다. 코부 대학 1기 졸업생인 사다치 시치지로에 의해 설계됐는데, 당시로선 최신 서양식 건물이었다고 해요.

 2층 회의실과 귀빈실에선 러일 전쟁 후 평화 정착을 위한 국경 설정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는데, 1984년 까진 오타루 시립 박물관이 이곳이었다고 합니다.(앞의 오타루 시립 박물관과 헷갈리지 마세요)

 참, 개관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5시까지, 매주 화요일은 휴관일이라고 하니 화요일은 피해 방문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6. 히로코와 이츠키가 스치는 장소 ‘이로나이교차로’

[日本 北海道 小樽市 入船] 

 히로코와 이츠키가 스쳐 지나는 장면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로나이(메르헨)교차로입니다. 오타루우체국, 비브란트호텔과 구 은행건물들이 모여 있는 사거리죠. 이 곳은 사카이마치도리에서 스시야도리를 한 블럭 지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JR미나미오타루 역에서 관광을 시작하면 곧장 마주칠 수 있는 곳이죠(도보로 약 5분).

 사카이마치도리는, 오타루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거리입니다. 르타오 본점을 비롯한 다양한 디저트 샵, 그리고 유리공예점과 오르골당이 있는 곳이죠. 이곳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스시음식점들이 즐비한 스시야도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 사실 오타루는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되기 이전에, 우리에게 친근한 어떤 만화의 배경이 된 도시입니다. 바로 ‘미스터 초밥왕’이죠. ‘마사즈시’라는 가게는 실제 만화책에도 등장할 만큼 인기 있는 스시집이니 꼭 들어보면 좋겠네요! 


7. 이츠키가 졸업한 ‘아사리 중학교’

[日本 北海道 小樽市 新光3丁目7−1 朝里 中学校] 

히로코에게 부탁을 받은 여자 이츠키가 즉석카메라를 들고 남자 이츠키의 추억을 찍으며 뛰어다니던 곳. 소년 이츠키와 소녀 이츠키의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바로 그곳. 오타루 시립 아사리 중학교다. 이곳은 제니바코 바로 다음 역인 아사리 역(무인역이다)에서 도부로 9분 거리에 있다. 그리 빡빡한 일정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내려 풋풋한 아사리 중학교의 정취를 느껴본 뒤 오타루로 향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8. 소년 소녀 이츠키가 자전거를 타고 장난을 치던, ‘테미야 공원(手宮公園)'

[日本 北海道 小樽市 手宮2丁目5]

도서부장이 된 이츠키 커플. 소년 이츠키는 사람들이 읽지 않는 책의 도서카드에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써 놓습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써 놓았던 것인지, 소녀 이츠키의 이름을 썼던 것인지는 후반부에 추측이 가능하지만요. 아무튼 두 사람의 학창시절이 전개되는 회상에서 피크를 이루는 것이 바로, 이 곳 테미야 공원이 배경이 됐던 씬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소녀 이츠키에게 달려온 소년 이츠키가 머리에 종이봉투를 씌우는 장난을 치거든요. 소년 이츠키가 소녀 이츠키에게 처음으로 스킨십(?)을 하며 호감을 표시하는 장면이랄까요. 오타루의 외곽 동네에 있는 이 공원은 오타루 역에서 츄오버스를 타고 ‘테미야 터미널’에서 하차하면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데요, 다리를 다친 소년 이츠키가 억지로 육상 경기에 나가 뛰다 넘어지는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합니다.


9. 이츠키가 감기로 입원했던 병원. ‘오타루 시청’

[日本 北海道 小樽市 花園2丁目12−1] 

 영화 초반, 아픈 히로코를 삼촌과 어머니가 억지로 데려다 줬던 곳. 그리고 영화 후반 쓰러진 이츠키를 등에 업은 이츠키의 할아버지가 폭설 속을 뛰어 도착했던 병원입니다. 현재는 오타루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죠. 시청 내부는 관광이 가능한데, 다만 이츠키가 입원했던 병실은 보건실이라서 관람이 제한된다고 해요.

 재밌는 사실이 두 개 있습니다. 먼저, 영화 속에선 이츠키의 할아버지가 이츠키를 등에 업고 폭설 속을 뛰어 1시간 안에 이곳으로 왔다는 사실이죠. 이츠키의 집이 있는 제니바코역은 걸어서 3시간 50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말이죠.

 두 번째는, 이츠키가 응급실에 간 뒤 삼촌과 어머니가 나누는 대사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삼촌과 이츠키의 어머니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죠. 

-이렇게 된 바에야... 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실지 그 집이 먼저 무너질지 끝까지 지켜보겠어요.

-부동산 입장에서 말하는데 집이 먼저 쓰러져요. 

 네. 그런데 실제로 이츠키의 집이 먼저 쓰러지고 말았다는 사실. 글 초반에 말했던 대로 이츠키의 집은 2007년에 전소했지만, 할아버지 역할을 했던 배우는 아직 살아 계신다고 하네요.


10. 오겡끼 데스까--- ‘텐구야마 산, 스키장’

[日本 北海道 小樽市 最上 2丁目16−15] 

 말이 필요 없는 곳이죠. 영화의 하이라이트, 히로코(그리고 이츠키)가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바로 그 설원입니다. 텐구야마는 해발 532의 산인데, 스키의 발상지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실제로 1923년에 제1회 전국 스키선수권이 개최되기도 했다네요. 이곳은 슬로프를 타고 올라가 오타루의 야경을 보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훗카이도의 야경 하면 대체로 세계 3대 야경으로 알려져 있는 하코다테 야경을 떠올리지만, 이곳 오타루의 야경도 만만치 않게 아름답다고 하네요.


 이로써 영화 러브레터와 함께 떠난 오타루 여행이 끝났네요. 재밌으셨나요? 

 훗카이도 여행객들은 대체로 삿포로에 숙소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산 치토세 공항이 있기 때문이죠. 아, 북쪽의 샤코탄 반도를 여행할 계획이라거나, 남쪽의 하코다테를 중심으로 여행을 하려는 분들은 물론 예외겠지만요. (하코다테에도 공항이 있단 사실 아세요? 훗카이도를 남부 중심으로 여행하신다면 하코다테 공항으로 가는 비행편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네요).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열차를 타고(대체로 웰컴패스를 이용합니다만, 여행일수와 JR패스에 따라 계산을 잘 해보는 게 좋습니다) 40분 내외로 도착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당일치기로 많이 다녀오더라고요. 하지만 하루 쯤 오타루에 숙소를 잡고 로맨틱한 항구도시의 정취를 온전히 느끼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아침 일찍 삿포로에서 출발 한다고 해도 디저트샵과 오르골당, 오타루 운하 등 가장 유명한 스팟만 구경하는 대도 시간이 금방 가거든요.


 더운 여름, 시원한 훗카이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오타루를 들러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 한 통씩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오겡끼데스까--- 하고 말이죠.



연애만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여행기 속 오타루, 정말로 다녀오려면?
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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