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리스 vs 하이엔드
고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행객들 중엔, 대단한 사진의 고수보단 평범한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건방진 평가로 들릴지도 모르니 정정하자면,
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사진을 잘 찍지!
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단 얘기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좋은 연장, 아니 카메라가 필요해졌고 구매를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좋은 카메라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좋은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실력이 좋은 사람이 갖고 있어야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 또한 맞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버린 거다. 사진에 대단한 조예가 없는 평범한 여행객일수록 오히려 적정 수준 이상의 좋은 카메라를 휴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 생각은 최근 그랜드캐니언으로 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사진을 보고 난 후 더욱 확고해졌다. 오직 휴대폰으로만 여행사진을 찍어오던 그 친구는 이번 여행을 위해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70만 원 안팎이었는데, 프로들에겐 감흥이 없을지 모르나 일반인들에겐 꽤 큰 거금이다). 주위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다.
사진 찍는 취미나 실력도 없는데 왜 그런 걸 사?
하던 대로 휴대폰으로 찍지.
그런데 녀석이 찍어 온 사진을 보고 난 후, 그런 핀잔들이 쏙 들어가 버린 거다. 휴대폰이 잘 나와서 카메라가 딱히 필요 없다고 우기던 다른 한 친구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 휴대폰으로 찍어온 다른 여행사진에 사진에 비해 월등하게 멋진 사진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말했다. 막 찍어도 예술이었다고.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사진 찍는 실력이 향상됐다거나 대단한 작품사진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버리게 되는 사진이 확실히 줄었다.
좋은 사진을 찍는 데 있어 좋은 카메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물이란 결론을 내리고 싶진 않았다. 다만, 대단한 노력과 열정을 투자하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풍경이 뛰어난, 그리고 대기의 질이 워낙 좋은 여행지라면 더욱 그럴 거고. 그래서 여행용 카메라를 구매하기 위한 나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고, 결국 이런 종착지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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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제품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즉 Digital + SLR)의 정의 및 카메라의 역사를 설명해야 한다.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검색을 추천하는 바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렌즈를 교체할 수 있고 기능이 좋지만 휴대성은 떨어졌던 디지털카메라(DSLR)에서 휴대성을 부각한 게 미러리스 카메라, 렌즈를 교체할 수 없고 기능이 부족하지만 휴대성이 좋은 컴팩트 카메라에서 기능성을 추가시킨 게 하이엔드 카메라다.
미러리스 카메라 : DSLR처럼 렌즈를 바꿀 수 있으면서, 컴팩트 디카 정도의 크기인 고화질 디카. DSLR에서 미러박스, 펜타프리즘, 광학식 뷰파인더를 제거하고 렌즈와 센서의 거리를 가깝게 해서 부피를 줄였다.
하이엔드 카메라 : 컴팩트 카메라 중 최상위 모델. 렌즈를 교체할 수 없어 구매비용이 따로 발생하지 않고 무게와 편의성, 가격경쟁력 면에서 DSLR보다 앞선다. 다양한 수동 기능과 광각 촬영, 동영상 촬영 시 고배율의 광학 줌이 가능한 제품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쇼핑용어사전) 참조
여행용 카메라에 대한 검색을 해 본 사람들은 동의하겠지만, 두 제품군 모두 휴대성과 기능성이 적절히 배합돼 있다. 다만 렌즈를 교체하며 써야 하는 미러리스 카메라는 휴대성보단 기능성에서 약간 우세함을 보이고, 하이엔드 카메라는 반대로 휴대성에서 우위를 보인다. 참 어려웠다. 여기에다 브랜드 선호도, 가격 메리트라는 부분까지 첨가되면 대체 어떤 카메라를 선택해야 할지 혼란이 왔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팁이지만, 우선 1순위로 고정시켜야 할 건 가격대라고 본다. 카메라뿐 아니라 시계나 TV, 자동차 등 모든 기기를 살 때에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좋은 것, 조금만 더 새 것을 위해 가격을 올리다간 끝이 없다. 지출 가능한 가격대에서 +-오차범위를 정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다음으론 브랜드다. 대표하는 디자인이나 로고가 확실한 의류 브랜드처럼, 카메라 브랜드 역시 브랜드별로 결과물의 색감이 다르다. 선호하는 색감에 따라 구매할 브랜드도 고정시켜 놓는 것이 카메라를 사는데 훨씬 수월하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가격은 70~80만 원대, 브랜드 까지 정해버렸다. 홍보글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브랜드는 생략하겠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색감의 브랜드로 정했다. 남은 건 미러리스나 하이엔드냐에 대한 문제였다. 결론은 하이엔드.
그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휴대성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여행객이, 같은 브랜드의 동 가격대 제품 중 미러리스냐 하이엔드냐를 고민하는 기준은 나와 같은 휴대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 시 렌즈 가방을 들고 다니며 렌즈를 교환해 가며 사진을 찍을 것인가?
주머니에서 꺼내 그때그때 사진을 찍을 것인가?
당연한 얘기지만, 렌즈를 교환해가며 사진을 찍는다면 결과물이 좀 더 좋다. 하이엔드 카메라의 센서가 아무리 발전을 했다 해도, 웬만한 미러리스 저가 렌즈보다 괜찮은 렌즈를 탑재하고 있다 해도, 비슷한 조건에선 당연히 미러리스 카메라가 훨씬 결과물이 좋다. 그런데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아예 미러리스 대신 DSLR을 구매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또다시 빠져버리게 된 거다. 어차피 카메라 가방을 들고 다닐 작정이라면, 그 무게가 조금 차이 난다고 해서 별 차이가 있을까? 향후 내가 사진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어 또다시 DSLR을 살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DSLR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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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휴대성’을 제쳐놓은 또 다른 고민에 빠져버리게 됐고 여행용 카메라 선택에 대한 고민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 가버렸다. 그렇게 몇 주를 허비하며 골치를 썩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게 된 거다. 편의성. 휴대와 사용의 편의성만 생각하자. 나중에 DSLR을 사는 일이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 최대한 많이 꺼내 많이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선택하자. 나는 미러리스와 렌즈의 조합보단, 하이엔드 카메라의 손을 들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언제든 찍을 수 있는 그런 하이엔드 카메라로.
제품군을 고정시키고 나니 검색이 더 즐거워졌다. 물론 흔들림도 간간히 있긴 했지만, 하이엔드 카메라로 결정을 하고 그 카메라에 대한 장점을 일부러라도 더 검색하다 보니 괜찮은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비슷한 가격대의 하이엔드 카메라들 중 가장 괜찮은 렌즈를 탑재하고 있는 모델을 찾게 됐고, 마침 그 모델은 내가 좋아하는 색감을 가진 브랜드였다. 가격 오차를 조금 넘어서긴 했지만, 정말로 조금의 오차였기에 꽤 만족하는 중이다.
사실 이 글의 초반을 쓸 때 가지만 해도, 내가 고민한 브랜드를 모두 나열해서 많은 정보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브랜드를 공개한다는 건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아닌 다른 브랜드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겐 불쾌감을, 아직 브랜드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과한 홍보글 이란 거북스러움을 줄 것 같았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이 글이 정보성이 떨어진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일기 와도 같은 글을 남기는 까닭은, 분명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다. 그에게 이 글은 작지만 결정적인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이엔드냐 미러리스냐의 고민에 빠진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분명히 얘기하겠다. 카메라 자체에 대한 욕심을 잠시 버리고, 여행지에서의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순간 적으로 당신의 눈에 포착된 좋은 풍경, 그걸 찍기 위해 당신이 취할 행동은 어떤 것 일지. 렌즈를 교환하면서라도 그 풍경을 찾아다니는 사람인지, 순간 적으로 보인 풍경을 재빨리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 상상 속의 당신 모습에 따라 미러리스와 하이엔드 중 하나를 선택하면 좋을 거다.
사실 요즘은, 카메라가 여행의 필수품으로 취급되진 않는다. ‘휴대폰의 발전=휴대폰 카메라의 발전’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빛의 양이 부족한 실내나 어두운 공간이라든지, 휴대폰 센서로 담기엔 멋진 풍경을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일이다. 배터리 부족이나 용량 부족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러리스든 하이엔드든, 휴대성이 좋은 카메라 한 대 정도는 갖고 다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연애만 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 & 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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