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맛있게 살찌는 게 좋다.
그래. 살이 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먹고, 덜 움직였으니까. 다이어트는 현대인의 필수 덕목이기에 피티를 끊긴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빠지지 않는다. 버티는 삶이 유행이라더니 이 아이들도 끈질기게 버티는 법을 따라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살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 왠지 짠하기도 하다. 얘들이 무슨 죄라고. 기쁘게 받아들인 내가 문제였겠지.
그래. 참 기쁜 나날들이었다. 어제는 양식, 오늘은 한식, 내일은 일식. 메뉴가 겹치지 않게 계획을 세워 놓고 맛집들을 하나 둘 도장 깨기 하던 나날들. 그 재미만큼 짜릿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잠들기 전 맛집 블로그를 검색하면 그건 살찌는 지름길에 입성한 것이라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유전자 지도라는 말처럼, 내 몸에 붙어 있는 살들엔 아마도 내가 직접 경험한 인생 맛집의 지도가 펼쳐져 있을 테다. 문득 윤동주님의 시 ‘별 헤는밤’이 떠오른다. 살 하나에 트러플 파스타와 / 살 하나에 북해도산 우니와 / 살 하나에 치킨라이스와...
그래. 이왕 찔 것 맛있게 먹어야 한다. 살을 빼려 노력하면서 도출한 결론이다. 맛도 없는 음식으로 찌운 살을 위해 그 몇 배나 되는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선 당연히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집을 가야 한다. 한국은 뭐 그렇다 치고, 시간과 경비가 한정돼 있는 해외여행에서 제대로 된 맛집을 찾는 방법이 뭘까? 필자가 생각하는 몇 가지 충족 사항은 대충 이러하다.
: 최근 당신이 즐겨 찾는 맛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5년 전 즐겨 방문했던 맛 집은? 자, 이제 비교해보자. 그 두 가게의 맛을 비교하면 어떠한가? 아마도 당신은 최근 즐겨 찾는 맛집의 손을 들어줄 거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당신의 입맛이 달라졌거나 이전 맛집에 질렸을 뿐, 사실 5년 전 맛집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을 리는 없다. 물론 그 맛집이 여전히 성행할 경우에.
여행 가이드 책자 및 수많은 블로그엔 대체로 5년 전부터 유명했던 맛 집이 나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지인들이 직접 추천하는 맛집은 최근 들어 유행하는 맛집일 경우가 꽤 있다.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자. 우리나라에 놀러 온 외국인 친구에게 한식 맛 집을 소개하여준다는 가정이다. 당신은 종로 어딘가의 60년 된 설렁탕집을 데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최근 생긴 깔끔한 한식집에 데리고 갈 것인가. 확률은 50:50 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당신 역시 해외에 놀러 갔을 시,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 굳이 현지인에게 맛집을 물어보고 싶다면 질문 자체를 조금 디테일하게 바꿔보자. ‘젊은 층이 좋아하는 트렌디한 맛집’과, ‘다양한 연령대가 좋아하는 오래된 맛집’ 둘 다 한 군데씩 가르쳐 주면 안 되겠냐고.
: 이건 전 세계 공통이다. 육-해-공 전 메뉴를 망라한 가게는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맛집 탐색의 기본이다. 맛있는 음식의 기본은 신선한 재료와 조리사의 오리지널 레시피!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는 집에선 당연히 메뉴 하나하나에 쏟는 정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굳이 선도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메뉴에 오랫동안 냉동보관 해 놓은 재료를 사용해서, 번갯불 볶듯 빨리 조리해서 서빙하는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특히 기차역이나 지하철 역 주변에 밀집한 이런 가게엔 방문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동하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에선 굳이 단골손님을 붙잡을 필요가 없기에, 요리의 진정성 보단 빠른 조리 속도와 합리적인 가격에 집중한 가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당들만의 매력도 있으니 한 끼 정도는, 할애를 해봐도 좋긴 할 거다. 요리를 먹는다는 접근 대신 현지인들이 끼니를 때우는 방식을 경험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해외 여행지 맛집도 알아보고, 메뉴도 확인해보기
: 맛집에 앞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 그건 바로 여행할 도시의 특산물의 종류와 그것이 가장 맛있는 시기이다. 요리의 맛은 재료가 50%는 좌지우지한다. 같은 피자라고 해도 유제품이 특별히 맛있는 도시의 피자는 그 치즈맛이 차원이 다르다. 필자가 경험한 대표적인 예가 북해도의 수프 카레다. 딱히 새로울 건 없는 메뉴임에 분명했는데, 그 맛이 수년간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재료의 영향이다. 북해도의 자연에서 자란 신선한 감자와 아스파라거스 등의 채소, 그리고 시레토코의 특산품인 닭, 이 모든 재료들의 신선도가 요리의 맛을 몇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주고 있었다. 같은 채소라 해도 그 도시의 기후 및 토양 등의 환경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메뉴라 해도 현지에서 먹는 맛이 다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요즘 들어 한국엔 다양한 세계 음식 전문점들이 오픈하고 있고, 사실 그 나라에 굳이 가지 않아도 많은 종류의 요리를 경험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요리의 본고장에 방문해서 먹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어째서 이곳에서 이런 요리가 탄생했는지에 대해 몸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맛집을 검색하기에 앞서 현지의 특산물, 내가 여행을 가는 시기의 제철 음식 등을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이 좋다.
: 맛집의 선택 기준으로, 줄을 많이 서 있는 집을 고르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줄로 알지만, 대체로 그 긴 줄에 서서 엄청난 대기시간을 소모해서 들어간 맛집 중 만족도가 높은 집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그 대기시간의 가치까지 맛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고향인 부산에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선 국밥집이 있는데, 사실 그 유명 맛집의 바로 옆에 있는 국밥집 역시 결코 뒤처지지 않는 맛을 자랑한다. 한쪽에선 파리가 날리는데 한쪽에선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을 보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옆집 사장님의 마음 모두가 생각나서 2배로 안타까울 때가 있다.
언젠가 푸켓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블로그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고 있는 로컬 음식점이 있었는데, 그 줄이 너무 길어(70프로 이상은 한국인이었지만) 옆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아무래도 그 엄청난 줄이 서 있는 맛집 역시 궁금했기에 기어코 방문을 했더니... 결과는 예상대로다. 첫날 방문했던 옆집의 음식 맛이 훨씬 좋았다.
해외 맛집 미리 예약하고, 줄 서지 않는 방법 알아보기
: 맛집엔 입성을 했으나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현지인들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맛집은 아니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먹는 음식엔 특별한 것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특별함이 당신에게 어울릴지 아닐지는 몰라도, 우선 시켜보자.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위한 것이니까.
대만의 한 우육면 집을 갔을 때가 생각난다. 한국의 블로그와 카페에서 정말로 유명한 맛집이었는데, 대부분 관광객들은 오직 우육면(그것도 오리지널 스타일로)만 먹고 오는 것 같았다. 극히 드물게는 찰밥까진 추천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직접 방문했을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그 오리지널 우육면만 먹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달랐다. 찰밥은 기본적으로 시킨 뒤, 뷔페식으로 반찬을 가져와 함께 먹는 게 기본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난 반찬을 가지러 가는 현지인들을 따라 똑같이 가져와봤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맛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만 사람들의 식생활 문화까지 알게 됐으니, 그저 음식만 맛보고 퇴장하는 방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방문이 아니었나 싶다.
연애만 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 & 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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