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목소리.

가수 김연우에 대한 단상들

by 은혜


1.

처음에 이 사람의 목소리는 좀 재미없다고 생각했었다. 착해빠진 음색 같아서 듣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왠지 불편했는데, 심할 때는 내가 때가 타서 그런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마음이야 그렇다 치고, 듣는 귀는 참 편안하고 좋았다. 잠자기 전에 듣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 후로 이불속에서 종종 들었다. 그런데 잠이 오기는커녕 도로 달아 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난감했다. 단순히 감상하기 좋은 목소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작정하고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차분하기 그지없는데도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묘하게 긴장되었다. 이렇게 힘 있고 솔직한 소리를 기껏해야 수면 유도용으로 여겼으니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계절 듣다가 그만둘 소리는 절대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아껴가며 들어야 할 소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2.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그의 목소리는 사실 회화보다는 조각을 닮았다. 그처럼 매끄럽고 서늘한 처리가 노래 곳곳에서 발견된다. 사람의 목소리를 상아라던지 대리석을 가공하듯 다듬게 되면 이런 느낌이 나게 되는 걸까. 긴 호흡이 요구되는 노래에서도 웬만해서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그야말로 단단한 조상(彫像)을 떠올리게 하는 기량이다. 가끔은 그 자신이 자기 노래의 감상자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럴 땐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힘들이지 않고, 드러난 모든 선과 면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아우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걸 추구하는데도 무정한 물체 같은 음악을 하는 건 아니니 그게 참 신기할 뿐이다...



3.

언제가 TV에서 김장훈이 김연우의 음악을 놓고 ‘착한 슬픔’이라는 비유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 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감정 처리를 이르는 것일 테다. 악을 쓰지 않아도 돼. 울부짖지 않아도... 더욱 마음에 든 건 어렵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둘러 말할 것 없이 정직하게 표현하는 그런 슬픔이, 그런 호소력이 김연우에게는 있다.



4.

김연우의 감성이 무작정 좋았던 건 아니다. 사실은 낯설고 생소해서 친해지기 쉽지 않겠다는 인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틈만 나면 울적해지곤 했지만, 이런 식으로 맑게 여과된 울적함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김연우의 방식을 따라 하면 내 힘들고 못난 감정도 견딜만한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5.

현실의 힘든 감정도 노래나 글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견딜만한 것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고? 결코 그렇지 않다. 고작해야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면 노래하거나 글을 쓴다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마치 밥을 먹거나 사랑을 하는 일처럼 말이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일을 놓고 온갖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떠받드는 건 아무래도 웃기는 일 같다. 그럼에도 어떤 노래는, 누군가가 써 내려간 글은 항상 빠짐없이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서 골몰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얻는 것은 언제나 거의 없다. 그런 글이나 노래는 쓸데없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아서, 집착하는 내가 도리어 깨끗하게 비워지는 것만 같다.



6.

크고 강한 감정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좀 더 큰 소리로 외쳐야 내 진심이 전해질 것만 같은 시끄러운 세상... 어쩐지 표현하면 할수록 더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내 안의 감정들이 무섭다. 이런 걸 과연 진심이라 해야 할지, 멋대로 뒤틀려 기괴하기까지 보이는 덩어리를 대하는 느낌이다. 나조차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저 보이기 위함이라면 적당히 윤색을 하면 그만이다. 가식과 미화가 들통나더라도 이게 내 까짓 이요, 슬쩍 발을 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를 똑바로 볼 수가 없을 텐데...





7.

김연우에게 기나긴 무명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누구나 다 안다. 그가 믿기 어려운 기량을 가지게 된 것을 그 시절의 연단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힘든 과정을 거쳐서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8.

똑같이 노력해도 똑같이 탁월한 기량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깨닫곤 한다. 특히 음악처럼 타고남을 요구하는 분야가 또 있을까 싶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타고남이란 진심을 전달하는 능력이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솔직하지 못한 음악은 오래가지 못한다. 음악은 사람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인 만큼 진짜가 아니면 금세 들통이 나고 만다. 명성을 믿고 공연장에 찾아갔는데 기교와 타성에 젖은 노래가 귓속으로 파고든다고 치자. 상한 감정은 둘째치고 몸이 먼저 못 견뎌할 것이다. 이상하게 피곤하거나 이상하게 짜증이 나거나... 흔히 음악에 인격을 부여하는 이유는 그것이 스스로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도 우리의 몸도 본질은 살아있음이다. 살아있는 것이라야 서로 부딪힐 수 있고 공명할 수도 있다. 한쪽만 살아있거나 둘 다 죽어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노래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단연 노래하는 사람의 진심이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통과해서 나오는 음악만이 살아있다. 진정성이 결여된 음악은 영혼 없는 몸이나 마찬가지로 기괴한 것이다. 사람의 몸이야 그런 경우 좀비라고 이르지만, 진심이 결여된 음악은 대체 무어라 불러야 되는 것일까.



9.

한 번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가다가 갑자기 땅거미가 지는듯한 느낌에 흠칫했던 적이 있다. 늦은 오후도 아니었고, 어쩌면 단순히 구름 그림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하필 그곳에 키가 크고 여리여리한 풀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길게 드리워진 잎새 그림자가 있기에, 또 발치에 닿을 듯이 가까워서 저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진 나머지 살짝 피해가면서 그 자리를 뒤로 했는데, 여전히 그 잎새 그림자가 내 발치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걸음걸음마다 외따롭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걸 떨쳐낸다는 건 도무지 자연스럽지가 않지만 어쨌든 아무렇잖게 걸어가면 그만이고, 그렇게 걷다 보면 한결 가벼워진 걸음이 되어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 김연우가 표현하고자 하는 슬픔이나 상실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10.

노래에 있어서나 사랑에 있어서나 그런 조심스러운 감성이 필요한 것 같다. 시작만큼이나 끝도 똑같이 조심스럽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냥 수줍기만 하다면 시작도 못할 것이고, 어찌어찌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흐지부지한 끝만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끝을 저만치 미뤄놓고 혼자 괴로워하다가 도망쳐버릴 수도 있다. 수줍음이 이토록 이기적이라면, 조심스러운 감정은 좀 다른 성격일까? 연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심스러움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심스러움 역시 이기적인 감정이다. 그렇게 하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드니, 상대방의 눈에도 좋게 비치길 바란다는 분명한 제스처이다. 격렬하지 않을 뿐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소리 없이 흘러넘친다... 다만 주워 담지도 못할 정도로 흘러넘치는 것을 꺼릴 뿐이다.



11.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가 감당하지도 못할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것이 아닌)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까스로 주워 담아 부르는가 하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인 양 듣기 좋게 포장하기도 한다. 슬픔을 극도로 추구한 나머지 감정을 지나치게 쏟아내는 경우도 있는데 개중에는 자기 비하의 감정들이 으뜸이다. 스스로를 벌레 취급하는 어둡고 질척한 감정들... 이런 건 마치 배설물을 보는 듯해서 역겹게 느껴질 때가 많다. 정말 좋은 가수라면 듣는 사람의 자존감도 생각해줘야지 않나. 감정 표현에도 적절한 수위 조절이 뒤따라야 한다. 동병상련까지는 좋지만 함께 진창을 구르자는 건 아무래도 싫다.


꿈이에요. 지금의 노래하는 김연우를 보면 이런 느낌이 들죠. 절망과 꿈을 동시에 암시하면서, 어느 쪽도 쉽사리 선택하지 않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펼치는 것 같아요. 그는 아시다시피 이별 노래 전문 가수죠. 뭐, 노래는 듣는 사람 나름이라잖아요. 절망하든, 다시 꿈을 꾸든 선택하는 것 역시 듣는 사람의 몫이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48dsOLYogZk&feature=player_embedded




최근에 부른 라이브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원더 라이브 공연 영상입니다.
CD 녹음된 거보다 더 잘 불러요. 그냥 라이브를 녹음해다가 팔아도 될 정도입니다. 여기 공연장 규모도 아주 작고, 관객들과 지척인 거리이고,
조명도 아주 어둡고 그래요. 편안한 분위기여서 그런지 노래가 더 편안하게 잘 들리네요.

(Move(무브) & Antidote(해독제) & 사랑한다는 흔한 말 &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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