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게 속 끓는 소리

소리꾼 김용우 <자진아리>

by 은혜




아마 둘이 눈이 맞았었나 보다. 큰 일 날 사이가 되었는데, 그게 그만 꼬여서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집안이 멋대로 정한 인연일랑 개나 줘버려라, 할 수도 있겠다. 에미 아비에게 토로하고 자리에 누워 딸년은 죽을 병에 들었소 할 수도 있다. 정 안될 것 같으면 미친 척 야반도주를 시도할 수도 있는데 여자는 그렇게 안 한다. 가만히 속을 쓸어내리며 혼인날을 기다리다가 거진 죽을 지경이 된 연인에게 말한다는 것이, 나 시집간 데로 머슴 오시구려...



김용우의 자진아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내심 웃었다가, 두세 번 연달아 들을 때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노랫말이라기보다는 생생하고 결이 살아있는 입말이었다. '너 붙잡고 울어도 소용없다, 내 빤한 몰골에 질려서 비난한대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 너와 나는 여기까지인데, 그래도 너 나 따라올래.' 이 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이별 선언이 또 있을까? 여자가 원한 상황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떠나가는 입장이다. 버리고 등 돌리려는 사람이 남겨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은 대개 보잘것없다. 초라하거나 졸렬하거나...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함께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 되어 오래도록 잊지 못할 아픔이 된다. 그런데 여자는 이 아픔을 터무니없이 어르고 달래서, 조금이라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려 한다. '아이고, 아이고, 성화로구나.' 뻗치는 성화를 잠재운답시고 속에도 없는 말을 미사여구로 풀어내지도 않는다. 나 시집간 데로 머슴살이 오라는, 일견 헛소리처럼 들리는 가사 속에는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미련이 숨어있다. ‘때 묻은 버선...’ 구절은 또 어떠한가. 예로부터 남편의 헤어진 버선 바닥을 조강지처가 늦은 밤 호롱불 아래에서 기웠다. 맺지 못한 부부의 연을 버선 볼이나마 받아주면서 잇고 싶은 마음인걸까. 이 질긴 미련을 울먹한 체념으로 풀어내어 끝끝내 상대방에게도 체념할 것을 종용하는 모습이 참 아무렇지도 않다. 자진아리를 들으면서 또다시 생각한다. 소리꾼 김용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속 끓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노라고. '잘 살아라 잘 살아라 내 생각 말고서 잘 살아라...' 왠지 입 안에서 쇠맛이 나는 것 같다.





자진아리


연분홍 저고리
남길동 소매
나 입기 좋고요
너 보기 좋구나

아이고아이고
성화로구나

가마채 잡고서
힐난 질 말고
나 시집간 데로
멈살이 오소래

아이고아이고
성화로구나

나 시집간 데로
멈살이 오면
때 묻은 버선에
볼 받아 줌세

아이고아이고
성화로구나


담장 밑에다
집 짓고 살아도
그리워 살기는
매일반이로다

아이고아이고
성화로구나

잘 살아라 잘 살아라
내 생각 말고서
잘 살아라

잘 살아라 잘 살아라
내 생각 말고서
잘 살아라

아이고아이고
성화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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