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마라.
오르페우스, 사랑하는 아내를 잃다.
- 오르페우스
리라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특기인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연주는 듣고 나서 가볍게 칭찬 몇 마디를 던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리라 타는 솜씨가 형편없어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그런 식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시무시한 의문을 느꼈다. 그들 중 특별히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그가 음악을 관장하는 신인 아폴론의 현신이거나 그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들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이 이처럼 신묘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겠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감정적인 여인들의 경우는 좀더 심각했다. 그들은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흐느끼거나 희열에 잠겨 들면서 종교적 신비 체험과 비슷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면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꿈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고분고분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와 노래를 두고 ‘훌륭함’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한 점은 그가 세인들의 평가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산천초목과 귀신을 홀리는 연주를 '평가'할 수는 없다. 누구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이적을 아무렇잖게 벌이고 다니는 이 남자의 이름은, 오르페우스였다.
Camille Corot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 돌아보지 마라
죽은 연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저승에서의 해후가 아니라면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할 도리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고 싶어 했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력적인 음악의 힘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어쨌거나 그는 리라를 연주해서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고 노래로 세이렌을 굴복시킨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음악 자체가 마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저 음험한 명계의 지배자인 하데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 죽음의 강‘이라고 불리는 여러 강줄기 중에 하나인 스틱스 강에 이르러 뱃사공 카론을 만났다. 투철한 직업의식을 지니고 있던 카론이 산 자를 자신의 배에 들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후에 헤라클레스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명계를 방문한다.) 명계의 문 앞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개 케르베로스는 오르페우스가 연주한 음악을 듣고 잠이 들었다. 세 개의 머리 중 끝까지 잠에 들지 않던 마지막 머리 하나도 오르페우스가 만들어내는 선율에 취해 두 눈을 감았다. 오르페우스는 명계의 여러 관문을 거치면서 잠시도 노래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무관심과 냉소가 일상인 죽은 넋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저승의 흙에서 나고 자란 초목이 생생한 이채를 발하는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특별한 저지 없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앞에까지 도달한 오르페우스는 작정하고 노래했다. 작정하고 죽은 아내를 여기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오르페우스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그의 인격이고 염원이고 전부였다. 여왕 페르세포네가 먼저 흔들리고 나중에는 하데스마저 고민에 빠졌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 돌아보지 말 것‘ 아내를 데려가도 좋지만 명계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는 절대로 얼굴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죽은 아내를 되살린다는 오르페우스의 야심 찬 계획은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죽은 에우리디케의 넋을 인도하며 명계를 벗어나던 오르페우스는 조바심과 성취감이 마구 뒤엉킨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에우리디케는 지나치게 말이 없었고 명계를 벗어나는 길은 험난하고 지루했다. 지상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오르페우스의 뒤에서 작은 비명 소리와도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는 창백하게 질린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정작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괴괴한 적막이 흐르는 어둠뿐이었다. 야수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명계의 차가운 어둠 앞에서 오르페우스는 피가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미처 자각하기도 전에 찾아온 두 번째 이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데스가 장난을 친 것이라고 말한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도록 갖은 방해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데스가 내건 금제 자체가 마음에 걸린다. 돌아보지 마라. 언뜻 준엄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이 금제는 어쩌면 죽은 사람을 깊게 생각한 나머지 일상을 포기하고 이적과 기사에 골몰한 청년에게 저승의 왕이 보내는 권고였는지도 모른다. 죽은 자를 돌아보지 말라. 과거를, 지나간 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이곳까지 오지 말라. 하데스의 생각이 이러했다면 오르페우스에게 죽은 아내를 되찾을 수 있는 가망성은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 기이한 최후
오르페우스는 다시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트라키아 지방 곳곳에는 아내를 잃어버리고 비탄에 잠긴 오르페우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저승의 왕을 '굴복'시킨 오르페우스의 영웅적인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녔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저마다 명계로 통하는 지상의 문을 찾아 나서거나 망나니 아리스타 이오스를 때려잡기 위해 궐기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솔직한 심정으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게 닥친 불행을 동정했다. 그리고 예민한 여인들은 오르페우스가 더욱 아름다워졌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두 번 잃은 예인(藝人) 오르페우스는 역설적으로 전보다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정말로 아름다운 건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겠지만 굳이 음악과 예인을 구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예인답게 오르페우스는 자신을 망가뜨리고 미치게 하는 깊고 무거운 감정을 음악을 통해 해방시켰다. 그의 음악에 깃들인 마력적인 힘은 이제 절제를 몰랐다. 과거 나무와 돌을 감동시키던 노래가 전 세계를 상대로 지극한 슬픔을 표출하고 있었다.
슬픔이 극에 달한 오르페우스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자들이 바로 미친 트라바
키아 여자들이다. 트라키아 여자들이 주기적으로 행하는 디오니소스 축제는 극도의 흥분과 감정을 추구한다. 축제 도중 신과의 합일을 위해 치르는 잔인한 의식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여인들은 오르페우스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린 나머지 일상조차 버려두고 열렬히 추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그들이 자신을 숭배하건 말건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오직 잃어버린 아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오르페우스를 보며 여인들은 절망을 느꼈다. 화를 내기도 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전보다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오르페우스에게 있었던 탓이다.
일설에 의하면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 여자들에게 온몸을 갈갈이 찢겨죽었다고 한다. 구애를 거절당한 것에 대한 분노라고 하는데, 아마 오르페우스를 서로 차지하려고 달려들다가 사단이 벌어지지 않았나 싶다. 고어물을 즐기지 않는 바에야 오르페우스의 최후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울 리 없다. 하지만 그가 맞이한 최후의 장면에는 사람의 심연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영화 <향수>를 보면 광기 어린 군중들이 향수 범벅이 된 그르누이를 말 그대로 '뜯어먹으려고' 달려드는 장면이 있다. 이때 군중들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인간 그르누이가 아니다. 그들은 눈 앞에 있는 것이 너무 탁월하고 훌륭하게 느껴진 나머지 먹어치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사고가 일어난 날, 트라키아 여인들의 눈에 비친 오르페우스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 길은 없다. 추측하는 것조차 두려운 것은, 내 안에도 그들이 희구하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John William Waterhouse - 오르페우스
* 오르페우스는 사후 고대 그리스 시대의 밀교密敎인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는 오르페우스교(敎)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오르피즘(Orphism)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