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숨겨진 아들이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젊은 남녀 일곱 명과 함께 크레타 섬에 도착한다. 그들은 왕궁의 지하 미로에 갇혀있는 황소 괴물에게 산채로 바쳐질 운명이다. 아테네에게 인신공양을 요구할 정도로 잔인하며 힘이 있었던 크레타 왕 미노스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맏딸인 아리아드네는 왕국과 아버지에 대한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그녀는 아테네에서 보내온 ‘사람 공물’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중 테세우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미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그가 미궁의 괴물까지 퇴치해버리라곤 생각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미궁에서 살아남은 다른 아테네 인들과 함께 크레타 섬을 탈출해 아테네로 향한다.
- 아리아드네의 실. 자신을 구속하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게 낫지, 그런 방법을 알았다면 말이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라고? 저 비극적인 아리아드네의 경우에는 물론 테세우스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일 테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테세우스라는 남자를 살리는 쪽을 택했고, 이후 자신을 돌보지 않을 정도의 사랑에 빠져들었다.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구하기 위해 건넨 '실'은-사랑에 대한 일련의 견해를 적용한다면- 오히려 그녀 자신을 구속하기에 유효한 것이었다.
테세우스는 애초에 누군가에게 속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주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자신의 질서 아래 둘 수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낯선 이방인의 목숨을 구한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게임에서 유리한 패를 쥐는 것 아니라 거꾸로 불리하기 짝이 없는, 약자의 처지가 되는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처음으로 느낀 변화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위험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대에 대한 감정은 유대감으로, 강한 애착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마치 자신과 어떤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과정이었다. 아마도 아리아드네는 자신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한순간도 잊지 않았을 것이며, 선택의 순간이 다시 한번 찾아오더라도 테세우스를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와 테세우스 모두 이를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역시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아리아드네였다.
떠난 것인지 떠나보낸 것인지 아픈 것인지 아닌 것인지.
- 버림받은 아리아드네
일설에는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버린 것이 아니라고 하고, 디오니소스 신이 아리아드네를 원했다고도 하며, 심지어 아리아드네 자신이 홀로 남겨지는 것을 자처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이설(異說)들이 아리아드네에 대한 테세우스의 불성실한 보답을 변호할 수 있을까.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 것은 오히려 테세우스의 잘못을 은연중 지적하며 그가 앞으로 겪게 될 시련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그런 식으로 두고 가서는 안되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될 수 없지만 그녀를 버린 것은 명백한 유죄이다. 저 미노스의 왕녀는 이제 아버지와 가문에 등을 돌린 배덕한 여인이며, 테세우스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실로 가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를 배신한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에게 배신당한다. 어쩌면 그녀에게 행복할 권리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행복이 아니어도 굳세게 지켜나가야 할 것들이 있다. 명예는 언제나 최후의 순간까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드리아네와 그녀의 명예는 난파된 선박처럼 심해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 미래를 바라보는 테세우스. 미래로부터 배신당한 테세우스.
테세우스의 입장에서 아리아드네는 여러모로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적국의 공주'라는 신분과 함께 '음모를 꾸민 동조자'라는 사실이 이중으로 그를 짓눌렀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테세우스는 더 이상 제물이 될 날만을 기다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포로가 아니다. 그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살아있는 영웅이다. 아테네의 왕위 계승자로서 확고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맨발의 시절을 회고하는 것은 우스운 일. 아리아드네가 지나치게 무거운 신발이라면 차라리 벗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테세우스는 은인인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날 수 있을 만큼 영리하고 대담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미래를 향하고 있다. 미노스 왕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모국을 바라며 정체를 숨기고 크레타 섬에 숨어 들어왔을 때부터 그러했다. 그는 자신이 적국의 공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함께 탈출한 사람들은 머잖아 자신의 치세 아래 놓이게 될 사람들이다. 그들로부터 반쪽짜리 영웅으로 취급받는다면 목숨을 걸고 섬으로 숨어 들어온 의미가 없었다. 물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불행해진 은인을 외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가진 것이라곤 패기뿐인 ‘순진한 이방인’에서 모국을 해방시킨 ‘왕위 계승자’로 순식간에 변모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테세우스의 일행이 탄 배는 중간 기착지인 낙소스 섬에 입항한다. 그리고 잠이 든 아리아드네를 그대로 두고 떠나버린다. 너무 손쉬워서 허탈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다. 이것으로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었다면 테세우스의 승리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테세우스는 곧바로 수많은 전투에 휩싸인다. 아마존 부족을 정벌하는 등 많은 피를 뿌리고서야 아테네 왕국은 겨우 안정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때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 꼭 닮은, 그래서 그녀를 추억하게 하는 아리아드네의 이복 여동생, 파이드라를 왕비로 삼는다. 크레타 섬에서 탈출할 때 언니를 따라왔던 파이드라는 곧 테세우스와 그의 일가를 철저히 부서뜨리는 악몽이 되었다. 아들과 아내의 사이를 의심한 테세우스는 결국 하나뿐인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것이 그가 그토록 사수하기를 원했던 미래의 단면이었다.
- 전형에서 벗어난 그들.
당대의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테세우스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비극적 선택을 앞두고 괴로워하는 영웅?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는 야심가? 혹은 연기에 능한 속물?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난무하는 것은 그만큼 테세우스라는 인물에 대한 혼란이 크기 때문이다. 영웅 이야기의 보편적인 특성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테세우스뿐만이 아니다. 아리아드네 또한 영웅의 손에 구조되는 전형적인 미녀가 아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한 남자에게 권력-정보의 독점-을 쥐어주고 죽을 자리에서 이끌어내어 영웅의 후광을 선사해주는 사람이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어울리는 일을 해낸 그녀는 언뜻 신비롭게 비치기도 한다. 테세우스와 헤어진 후 디오니소스 신의 아내가 되었다는 후일담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아드리아네는 무녀가 되어 망각과 환락을 주재하는 신神의 일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왕국을 배신하고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리아드네를 상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운명적 여인 femme fatale‘이다. 보통 남자를 유혹해서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라는 뜻으로 통하지만 본래의 뜻은 조금 다르다. fatale은 ’ 숙명적인 ‘, ’ 운명적인’이란 뜻이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여인을 가리킨다. 강하고 불가해한 운을 타고남으로써 다른 사람의 평범한 운명까지 비틀어버리는 여인이 팜므파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테세우스는 그녀의 인생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하나의 변수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테세우스가 그녀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테세우스의 운명을 흔들고 비틀어버림으로써 그녀 자신의 숙명을 완성시킨 것이다.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강하고 불가해한 팜므파탈이 아니라 살아있는 아름다운 승전 트로피이다. 아리아드네는 아름답지만 영웅 신화에 어울리지는 않았던, 그래서 고향으로 가져가는 승전 트로피가 될 수 없는 여인이다. 아무렴 어떤가. 워터 하우스가 그린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는 버려진 여인답지 않은 평온함과 여유로운 분위기에 잠겨있다. 떠난 것인지 떠내 보낸 것인지, 아픈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아리아드네를 마냥 동정하기엔 그녀가 감내한 운명이 결코 가볍지도, 우습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 이주향 선생님이 쓰신 칼럼 '워터하우스가 그린 아리아드네' 주소는 여기에! 재밌어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22185914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