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양의 탑 6권에 대한 단상.
- 내 첫 번째 종이 인간
눈물 콧물을 흘리게 했던 내 첫 번째 종이 인간이 여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진작에 돌아왔는데 이제야 만났다. 여전히 마른 뼈 같이 팍팍하기 이를 데 없어서 기껏 든 반가운 마음조차 싹 물리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가만 보자. 그때 나는 무척 동경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늙은이 같이 상당히 웃긴 마음이 되어버렸다. ‘그래. 당신의 팔자가 당신의 탓은 아니지. 그런데 아마 당신의 탓 일거야...’ 그처럼 끔찍한 일을 당한 것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줄 알지만, 그래도 그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아라비카처럼 나도 본의 아니게 훔쳐봐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생각할수록 내 종이 인간이 감내해야 했던 게 ‘그 이상’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안배할 때 꽃길이 아니라 진창을 준비하는 마음이란 건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그 고통을 페라루하가, 이제는 키릴이 다시 겪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키릴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힘든 나머지 차라리 돌이나 흙처럼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도 슬프다. 누구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짐을 떠맡기엔 담고 있는 그릇이 너무나도 연약하다. 약간의 고문으로도 충분히 망가질 수 있는 인간의 정신을 타고났고, 고작해야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의 몸일 뿐이다.
- 발 아래 오물
키릴이 카니크 지지에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너무나도 그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이런 말이 잔인한 줄은 알지만- 그의 남겨진 인생을 위해서도 낫다고 생각되었다. 카니크 페라루하로서 발 아래 오물을 걸어나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회자정리會者定離도, 지는 해를 붙들지 놔둘지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키릴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꼭 보고 싶다고,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깨달아 진창에서 걸어나오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 대신살이
진스카가 키릴에게 끌리다 못해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진스카는 죽은 아버지의 못다 한 삶을 살아가는 대신살이 중이다. 세상 사람들은 진스카를 진스카가 아니라 진스카의 아버지인 늙은 대제후 하즈라샤로 대한다. 진스카는 아버지가 살아생전 수행했던 모든 임무와 권리를 ‘대신’ 수행한다. 그럼 진스카 본인은 어디에서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인 걸까? 물론 아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후계자이니 대신살이가 끝나는 날에는 그 자신으로서 '대제후 하즈라샤'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인과의 그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키릴과 카니크 페라루하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키릴은 이를테면 고대의 전능인이었던 카니크 페라루하의 대신살이를 하는 셈이다. 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들은 그에게서 페라루하만을 보기도 하고, 겹쳐보기도 하고, 또는 전혀 다른 존재로 이해하기도 한다. 키릴은 페라루하의 환생인가? 아마 맞을 것이다. 하지만 페라루하가 품었다는 수천 겹 자아 중의 하나는 아닐 것이다. 키릴의 존재 자체가 페라루하의 의지(The Will)라고 해도 키릴의 공과功過는 어디까지나 키릴의 것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삶과 고통은 언제나처럼 페라루하의 '역할'이었다. 이 모든 것을, 고통을, 키릴이 전혀 원치 않았을 거란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타고났고, 주어졌고, 벗어날 수 없었다.
역할 앞에서 무시되고 배제되는 자유로운 자아. 아버지의 대신 살이라는 어이없는(?) 삶을 살아가는 진스카는 그 기분의 맛을 알 것이다. 그래서 키릴에게 그 자신이 당하고도 미처 알지 못하는 맛을 일러주려고 애쓰는 거겠지.
- 곁다리 생각
전민희 작가야 워낙 잘 쓰는 작가여서 이 부분에 대해 말한다는 게 진부하지만 그래도 조금 끄적이고 싶다. 광대한 주제의식이나 잘 짜인 플롯, 아름답고 명료한 문체보다도 더욱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들 간의 애착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다. 미묘하면서 덤덤하고, 다칠 듯이 섬세하면서 즉흥적인 맛을 너무나도 잘 살린다. 캐릭터 간의 소위 케미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데, 어떤 때는 그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 당장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가가 작정을 하고 오직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를 쓴다면 무시무시하겠다는 생각이다.
- 점쟁이 글
한 가지 거슬리는 게 있었다. 이 작품의 플롯 중에 하나가 ‘예언’이다 보니 그간 눈뜨고 당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 6권에서는 정도가 심했다. 크고 비밀스러운 일들이 나열되고 다시 나열되고 더 말할 듯이 이어지다가 끝. 특히 은둔자 챕터의 점쟁이 같은 글을 읽을 때에는 다소 허탈했다. 책에 인격을 부여할 수 있다면, 이 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용이 얼굴 없는 점쟁이 앞에서 탈탈 털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책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예언했다던가... 그토록 낱낱이 드러났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벌어질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다. 궁금하기도 하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이 책의 열린 결말이여...
- 운명
소설 ‘태양의 탑‘에서 전작이지만, 연대순으로 태양의 탑보다 후대 이야기인 소설 ‘세월의 돌‘의 자취를 발견하며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흥미가 더 살아나서 이야기에 몰입이 잘 되니까. 작가가 의도하고 쓰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는 하다. (가령 키릴의 제자인 에제키엘의 정체를 놓고 벌어지는 공공연한 숨바꼭질이라든지) 하지만 태양의 탑은 태양의 탑이고, 세월의 돌은 세월의 돌이다. 태양의 탑이 만들어내는 그림에 꼭 세월의 돌이라는 퍼즐 조각들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감추어진 퍼즐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만들 수도 있다.
태양의 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미래와 후손들의 안위에 꽤나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그들의 힘은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들을 놓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겠지만, 어쩌면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의문은 어떨까. 대체 누구를 위한 세상인가? 세상이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기나 하는 것인가? “밤을 본 적이 없던 하루살이들은 죽어가는 태양을 보고 겁에 질려 세상의 종말이 닥쳐왔다고 떠들겠지만 너희가 죽을 때가 된 것뿐이다 (칼드 曰)”
균열이라는 이름의 종말이 닥쳐오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중 인물들의 행동이 모두 같으리란 법은 없다. 누군가는 오히려 종말을 반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체념하는 길을, 누군가는 저항을, 또 다른 누군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해묵은 은원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저마다 가리키는 행보에 주목하기보다 그저 누구는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는 후대의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이라는 추측에 매달리며 ’ 세월의 돌’의 내용을 전개하면 모든 것이 그저 순리대로 흘러갔을 뿐이라고 믿기 쉽다. (이런 건 패배주의에 가까운 운명론이다.)
정말 그럴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태양의 탑이 다루는 운명은 그토록 쉽게 간파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운명이 한 사람에게 계시되던 시절이기에, 사람이 열쇠였기에, 어느 것도 쉽게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저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처럼...
- 사람
믿기 어렵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 그저 사람일 뿐인데 세상의 지표가 된다고 해야 할까,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온 세상이 행군해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마치 급류를 타고 흘러가 듯 가파르게 말이다. 역사 속의 어떤 정치가들과 사상가들,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예지의 대상이 되어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이 되지 않는 부류이다. 펼치면 혼란과 종말, 재생과 구원, 과거와 미래의 약속이 나오는 살아있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읽어내는 이에게 그 책은, 그 사람은 온 세상이 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세상 그 자체가 되고야 만다.
-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그는) 신뢰를 배신당하고 나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렸죠. 마치 이 세상처럼, 구원할 가치가 없는 이 세상처럼 말입니다.(스노이켈 曰 )” 이렇게 우스꽝스럽지만- “과거는 단지 끝나버린 것. 되풀이되지 않는 것. 그대에게는 다른 소중한 이들이 있네.(카니크 지지에 曰)” 복수보다 더 나은 선택지도 분명 존재한다. 그게 무엇일지 알 듯 말 듯해서, 자꾸만 읊조리고 싶은 대사들이다. 키릴의 마지막 선택이 궁금하니 당분간은 7권이 나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릴 것 같다. 올해 안으로 발간된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연말이나 내년 연초에 나왔으면 좋겠다. 시린 겨울을 닮은 소설이기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으면 운치가 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