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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Aug 09. 2017

쓰레기, 다시 쓰면 애장품 !

쓰레기 X 사용설명서 전시회 in 국립민속박물관




 흔히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리는 물건’을 ‘쓰레기’라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 속의 쓰레기는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버려진 쓰레기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소비했는지를 보여주며 시대상을 말해줍니다. 선진국에서는 쓰레기를 분석해 생활사를 복원하는 ‘쓰레기 고고학’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인데요. 지난 7월 19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쓰레기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를 시도하는 전시회가 개막했습니다. 쓰레기 고고학에 민속학, 사회학적인 분석까지 더한 국내 최초 전시, '쓰레기 X 사용설명서' 전시회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관


 프랑스 국립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MuCEM)과 공동으로 진행되는 '쓰레기 X 사용설명서' 전시는 인류 공통의 숙제인 쓰레기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전시에는 거름통, 넝마 바구니, 지승병, 재활용 등잔 등의 유물·사진 자료를 비롯해 쓰레기로 사라질 뻔했던 문화재인 '하피첩'(霞帔帖, 보물 제1683-2호), '미인도'(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소장) 비롯한 300여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공간(Part1)과 그에 관해서 우리 이웃이 보여준 대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Part2)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ART 1_쓰레기를 만들다&처리하다

기획 전시실 1


1인당 하루에 배출하는 쓰레기는 평균 얼마나 될까요? 전시 1부의 도입부에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지를 영상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가 들어서면서 우리의 생활공간 곳곳에는 간편하게 소모하고 버려진 일회용품 쓰레기들로 넘쳐나게 되는데요. 이러한 현실을 ‘초기 컵라면 용기’, ‘나무 도시락’ 등의 전시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넝마 바구니, 폐지, 손수레 등 폐자원 수집 도구, 한양대 문화재연구소가 2009년 발굴한 '서울 행당동 출토 생활쓰레기 유물' 등을 통해 현시대의 쓰레기 문제를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1부 전시장 안의 작은 코너에서는 쓰레기를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10가지 물상인 '십장생(十長生)'에 비유한 작품이 선보입니다. 해, 산, 구름, 물, 돌, 소나무 등의 전통적인 십장생이 현대의 다양한 쓰레기들로 대체된 모습이었는데요. 스티로폼, 알루미늄 캔, 유리 같은 합성소재들이 자연분해가 되는 데에 걸리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소위 '현타(현실타격)'를 안겨주는 날카로운 풍자였습니다.


친환경 디자인 커뮤니티 '에코퍼센트(E%)'의 '신 십장생' 작품 모습


서울 행당동 출토 생활쓰레기 유물

한양대학교가 한국 토지공사 서울 행당구역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조사하던 중 출토된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생활 쓰레기이다. 2009년에 버려진 쓰레기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버릴 쓰레기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PART 2_쓰레기를 활용하다


기획 전시실 2


지금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쓰레기가 늘 이렇게 넘쳐났던 것은 아닙니다. 전통시대는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엇이든 함부로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전시 2부에서는 ‘지승병’, ‘피피선 바구니’, ‘재활용 등잔’ 등 재활용사 관련 유물과 함께 우리 주변 이웃들이 실천하고 있는 대안을 자료와 인터뷰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특히 쓰레기로 오인돼 잃어버릴 뻔했던 하피첩,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 미인도 등의 문화재도 함께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고 어떠한 것도 과도하게 만드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살림 도구는 더 쓸 수 없을 때까지 사용했고 땅에서 나온 것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이루었습니다. 분뇨도 자원으로 사용했고 전깃줄로 바구니를 만들기도 했으며 어느 집에나 대대로 내려온 손때 묻은 생활용품 몇 점 정도는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선망하는 경향이 강한 요즈음에는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을 유난스럽게 보는 인식이 있는데요.

우리 주변에는 재활용과 재사용의 필요성을 알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시 2부에서는 쓰레기 문제를 모색하고 해결하려는 개인과 단체, 기업을 소개합니다. 장난감 재활용 사회적 기업 ‘금자둥이’부터 버려지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는 마을기업 ‘리폼맘스’, 양복을 기증받아 면접을 준비하는 구직 청년 등에게 값싸게 대여하는 ‘열린 옷장’, 제주 바다의 쓰레기를 수집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재주도좋아’, 폐품을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키는 리폼의 달인들까지 쓰레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리미, 1950년대, 박귀복 (왼)                                                아동복과 나무블록, 1990년대, 구문회.정명옥 (오) 

소장자가 시집온 뒤 물려받은 다리미이다. 한복집을 운영하는 소장자는 손에 익은 다리미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 110V를 220V 변압기로 바꿔서 쓰고 있다 (왼쪽)

소장자는 첫째 아이 출산 선물로 이종사촌에게 받은 아동복을 네 자녀에게 물려 입혔다. 나무블록은 처조카에게 물려받아 네 자녀 모두가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았다. 자녀들의 손때와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어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오른쪽)


리폼의 달인 '강혜영, 박인정, 송지우' 인터뷰 영상


                                                                                           

하피첩, 미인도 등의 문화재들 역시 이번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한때 쓰레기로 오인되어 소실될 뻔 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인데요. 그 중 정약용의 하피첩(帖)은 6. 25 전쟁 때 분실된 후 2004년 폐지 줍는 할머니가 수레에 실어 사라질 뻔했으나 이를 발견한 사람이 TV 유물 감정 프로그램에 의뢰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해남 윤씨 종가에서 발견된 미인도 역시 쓰레기 더미에서 겨우 살아남아 현재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에 소장되었습니다. 미인도는 윤두서의 손자 윤용이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에 많지 않은 여인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정약용의 하피첩 (왼)                                                                             윤용의 미인도 (오)



전시 후반부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재활용 놀이터, 싫증난 장난감을 서로 교환하는 코너 등의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새활용upcycling 상상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폐헝겊으로 만든 블록으로 칠교놀이를 하고 있었는데요. 놀이를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재활용에 대해 배우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박물관 야외와 실내에는 최정화(설치미술가)의 ‘만인보’, 'breathing flower‘, ‘Alchemy’ 작품과 버려진 물건을 예술품으로 탄생시킨 김종인(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의 ‘마니미니재미形’ 등 정크아트(Junk Art)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폐헝겊 블록으로 칠교놀이를 하는 아이들
서울여자대학교 김종인 교수의 정크아트 ‘마니미니재미形’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정크아트 'Alchemy'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버려지는 소재들을 사용하여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일상의 연금술을 보여주는 정크아트(Junk Art) 작품. 

                                  


이번 전시회는 쓰레기 문제와 대안을 이야기하는 전시회로서 무엇보다 우리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생활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쓰레기에 대한 탐구는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현대의 무분별한 소비 세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다행히도 우리 주변 가까이에는 오래된 물건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나눔으로, 어떤 사람은 예술작품의 소재로, 또 다른 사람은 의미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자칫 버려질 수도 있는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합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쓰레기, 혹은 쓰레기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물건들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별전 쓰레기 X 사용설명서 전시회는 오는 10월 3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됩니다. 전시와 연계하여 '우산 고쳐 사용하기' 체험과 ‘폐품을 이용한 새활용UP-CYCLING 공예’ 체험이 매주 토요일에 진행됩니다. 전시 관람료는 무료.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30분까지이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21시까지 연장 개방되어 좀 더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버리면 쓰레기, 다시 사용하면 애장품! 쓰레기에 대한 똑똑한 사용설명서를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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