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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Oct 07. 2017

절대군주의 화려한 덕질

왕이 사랑한 보물 전시회 in 국립중앙박물관





이 세상의 진귀한 것, 아름답고 찬란한 것들을 수집하며 스스로의 권위를 드높이려고 한 왕이 있었습니다. 작센의 선제후이며 폴란드 왕이었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Augustus the Strong, 1670-1733)’입니다. 그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보석과 공예품들을 수집했을 뿐 아니라 예술가와 장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덕분에 그가 지배했던 독일의 작센 주 드레스덴은 당대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예술도시로 자리잡았습니다. 18세기 독일의 화려한 바로크 예술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 명품전’을 찾았습니다.




바로크(Baroque)는 17세기에서 18세기 유럽에서 교회와 궁정을 중심으로 발달한 예술 사조를 일컫는 말입니다. 역동성과 화려함, 장엄함을 특징으로 하는 바로크 예술은 17세기 후반 루이 14세와 같은 절대군주가 등장하면서 중심 무대가 교회에서 궁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작센의 수도 드레스덴은 독일 바로크 예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당시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소규모 영방 국가들로 존재했습니다. 작센은 당시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제후국(選帝侯國)이었습니다. 왕이 되고자 열망했던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1697년 폴란드 왕에 올랐습니다. 그가 일구어낸 작센-폴란드 연방은 아들 아우구스투스 3세가 재위한 1763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재위 당시 작센과 주변국가 (1721년경)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1720-1730년 경,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 소장


이번 전시의 주인공 '강건왕 아우구스투스(Augustus the Strong, 1670-1733)'는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바로크 궁정 문화를 이끈 왕입니다.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에 버금가는 화려한 궁정문화를 자랑했습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보여준 절대 왕정의 권위를 동경하였으며 드레스덴에서 이를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드레스덴으로 불러들여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보물을 제작하게 했습니다. 단순히 최고의 예술품을 수집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았고, 제한적이지만 대중에게 공개하며 스스로의 권위를 드높이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그린볼트'라고 하는, 궁전 속 보물의 방이 탄생했습니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을 분석하고 소개합니다.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 왕으로 즉위한 그의 활동을 조명하고, ‘강건왕’의 의미, 그 양면성을 해체된 군복과 태양 가면, 의례용 검, 사냥도구 등의 전시품을 바탕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 뜬 태양 가면>, 1709년, 무기 박물관 소장


이 태양 가면은 1709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폴란드 왕으로 복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4세를 초청하여 벌인 '신들의 행렬' 행사에서 착용한 것입니다. 밤에 펼쳐진 이 연회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태양신 아폴론으로 분장한 '밤의 발레'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생김새를 본 뜬 이 태양 가면을 씀으로써 자신이 아폴론의 화신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절대군주로서의 확고한 이미지를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사냥 도구>, 1703년 이전, 무기 박물관 소장




그린볼트 : 왕이 만든 보물의 방


상아의 방 모습


 전시 2부에서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최고 수준의 예술품을 수집하고 공개하기 위해 만든 보물의 방 ‘그린볼트(Green Vault)’를 소개합니다. 그린볼트라는 명칭은 궁전 천장이 녹색으로 도장되어 있던 데서 유래합니다. 원래 그린볼트는 작센 선제후들의 보물을 보관하는 비밀창고의 역할을 하던 장소였습니다. 1729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완성시킨 그린볼트는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큰 왕실 컬렉션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명성을 높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구상에 따라 상아, 청동, 은, 도금은 등 작품의 재질별로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서 소장품을 나누어 전시했습니다. 제한적이지만 유럽 왕실 가운데 처음으로 보물의 방을 대중에게 공개했으며 소장품 목록을 만들어 컬렉션이 궁정 바깥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린볼트는 유럽 최초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의 방> 모습
<아테나>, 1650년경, 그린볼트 박물관 소장


'은의 방'에 전시되었던 작품 중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단 세 점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대형 은 조각상은 재료 자체가 고가였을 뿐만 아니라 제작하는 데도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해서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주제로 한 은 조각품은 귀족들의 수집 대상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답게 투구와 갑옷을 갖추고, 손을 벌려 우아한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도금은의 방> 모습
<여성 형상의 술잔>, 1603~1608년경, 그린볼트 박물관 소장


바로크 시대 궁정에서 유행한 드레스를 입은 이 여인은 머리 위로 높이 잔을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잔은 결혼식에서 '술자리 놀이'에 사용되던 것입니다. 머리 위의 잔 뿐만 아니라 종 모양의 치마 역시 잔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신랑은 치마에 담긴 술을, 신부는 화려한 금세공 장식을 더한 바다방석 고둥 잔을 비워야 했습니다.



<금은보화의 방>과 코너캐비닛의 모습


<퍼레이드 장식함>, 16세기 말, 그린볼트 박물관 소장


<로즈 컷 다이아몬드 장식 세트 중 작은 검과 칼집>, 1782-1789 경, 그린볼트 박물관 소장


로즈 컷 다이아몬드 911점으로 만든 작은 검과 칼집입니다. 무기가 아니라 왕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장용 검이기 때문에 매우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어떤 보석을 사용하였는가에 따라 군주의 격이 드러나므로, 이러한 장식 세트에는 최상급의 보석이 사용되었습니다. 오른쪽의 훈장은 강건왕이 폴란드의 왕이 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부터 받은 황금양모 기사단 훈장입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아들(아우구스투스 3세)의 치세에 이르러 다이아몬드 369점으로 더욱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도자기 궁전 : 미완의 꿈





  전시 3부에서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수집하고 제작한 도자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하얀 금’으로 불리던 자기는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워 가장 귀하고 인기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강건왕은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를 시켜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그의 말년에는 중국 자기와 대등한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는 강건왕은 중국, 일본 도자기 수집품 및 마이센 자기로 장식한 ‘도자기 궁전’을 만들고자 구체적인 구상을 세웠지만 완성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전시에서는 왕의 구상에 따라 ‘도자기 궁전’을 부분적으로 재현한 모습을 선보이며, 18세기 중국과 일본의 수출 도자기를 비롯해 초기 마이센 자기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장식 자기 세트>, 1700~1720년경, 도자기 박물관 소장


중국 밸러스터 형태의 병과 마이센 복제본 (오른쪽), 1662-1722년경(왼), 1725년경(오), 도자기 박물관 소장


독일의 마이센 자기는 오늘날 유럽을 대표하는 도자기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작센을 상징하는 마이센 자기의 쌍검 표식은 마이센 자기가 역사적으로 드레스덴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이센 자기는 처음에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모방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한 실용기가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붉은 용’ 식기 세트>, 1730~1770년경, 도자기박물관 소장


이번 전시에서는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마이센에서 제작한 유럽 최초의 왕실 자기 식기 세트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왕실에서 쓰였던 유럽의 식기 세트 모양과 아시아 권역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문양이 결합된 것으로 도자기가 장식품에서 실생활에 사용되는 식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본 전시회에서는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을 대표하는 그린볼트박물관, 무기박물관, 도자기 박물관이 소장한 엄선된 대표 소장품 130건이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화려함과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소장품들은 말 그대로 눈이 부셨는데요. 2부 그린볼트 : 왕이 만든 보물의 방은 특히 18세기 바로크 궁정문화의 진수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초고화질 사진을 이용한 전시 연출 기법이었습니다. 확대 사진 기술을 이용하여 드레스덴 궁전의 내부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전시 공간을 연출해냈는데요. 덕분에 실제로 궁전 안에 와 있는 듯한 (근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럽 왕실 컬렉션이 대중에게 널리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도 좋았습니다. 절대 군주의 '화려한 덕질'이 예술 사조를 꽃피우며 후대에 길이 남을 유산이 되는 모습은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 명품전 전시회는 오는 11 26()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전시되며,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12월 9일부터 2018년 4월 8일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전시 기간 동안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 ‘큐레이터와의 대화 진행됩니다. 성인 9000.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에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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