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해와 달이 처음으로 생긴 이야기. 호랑이가 나오고 사이좋은 오누이가 나오는 이야기. 선녀도 못된 계모도 하늘나라도 이상한 지하세계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다시 어른이 된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입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구전을 벗어나 문자로 기록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읽고 쓰는 한글로 기록된 것은 불과 백 년 전의 일입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전래 동화의 지나온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를 취재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특별전 '한글 전래 동화 100주년 전시회'입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한글박물관
전래 동화는 오래전부터 전해 오던 이야기를 어린이가 읽고 듣기에 좋도록 다듬어서 글로 적은 어린이 문학의 한 분야입니다. 이번 전시는 신화, 전설, 민담과 고전을 통해 전해 오던 옛이야기를 전래 동화로 새롭게 쓰고 발전시킨 지난 100여 년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전시는 1부 '한글 전래 동화의 발자취', 2부 '한글 전래 동화의 글쓰기', 3부 '한글 전래 동화, 더불어 사는 삶 이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본격화된 한글 전래 동화가 수집되고 기록되고 출판되어 온 100여 년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또한 한글 전래 동화의 글쓰기 특징과 한글 전래 동화가 간직하고 있는 삶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글 전래 동화의 발자취
전시 1부에서는 한글 전래 동화가 걸어온 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제 시대 장차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의 존재를 주목하게 되면서,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됩니다. 이에 따라 어린이를 계몽하는 방법으로 어린이 문학이 발전하게 되는데요. 아동 문학과 소년 문학의 개념이 이 시절 창간된 잡지들 속에서 확인됩니다.
붉은 저고리 창간호, 1913년, 김병준 소장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전래 동화 '바보 온달이'가 실린 어린이 잡지입니다. 1910년대 어린이에게 전해 줄 좋은 옛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하는 계몽 운동에 영향을 받아 전래 동화 문학이 시작되었습니다. 1920-40년대에는 신문, 잡지 등에 전래 동화의 발표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전국의 옛이야기를 모아서 엮은 전래 동화집도 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동화대집, 심의린 지음, 1926년
'멸치의 꿈', '도깨비 돈', '콩쥐팥쥐' 등 66편의 전래 동화가 실려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래 동화집입니다. 국문과 한문을 섞어 쓰면서도 한자의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한글을 덧붙여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일지사 발행, 1975년
"외국 것보다 우리 것, 새것보다 옛것! " 해방 이후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래 동화 문학은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어린이 독본(1946)>, <조선전내동화집(1949)>과 같은 전래 동화집이 만들어졌고 한국 전쟁이 있었던 1950년 이후에도 <꼬부랑 할머니(1956)> 등이 출판되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부터 동화책에 원색 그림의 비중이 점점 커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린이에게 보다 친근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그림 전래 동화책이 발달하게 되면서 전래 동화의 글쓰기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한글 전래 동화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 1부
한글 전래 동화의 글쓰기
옛이야기의 동화 글쓰기는 어린이가 읽기에 쉽고, 재미있으며, 배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전시 2부에서는 한글 전래 동화의 글맛과 바람직한 글쓰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옛이야기는 오로지 기억에 의존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극적이고 간결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전래 동화에는 입말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데요. 이를 잘 다듬어 글로 옮기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2부는 우리 전래 동화를 잘 쓰고 바르게 전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1959년 문교부에서 발행한 심청 이야기와 1990년 웅진출판에서 발행한 효녀 심청 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 시간과 장소는 모르게"
"아홉 번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 - 감정과 행동 묘사는 극적으로"
"예쁜 콩쥐 사나운 팥쥐 - 착한 것과 나쁜 것은 비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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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설 흥부전(1920년대)과 '한국교육동화20'에 실린 전래 동화 흥부 놀부(1984년)
"구렁이를 때려 던진 다음 - 상황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
같은 장면의 묘사를 비교했을 때 고소설은 설명이 자세하고 긴 반면 전래 동화는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여러 이야기로 전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다양한 이야기로 전해지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기로 유명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수많은 출판과 각색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전래 동화입니다. 오누이가 아닌 세 남매 또는 세 자매가 주인공이 되거나, '해동이, 해순이', '해순이, 달순이, 별순이'처럼 주인공의 이름이 있는 것도 있습니다. 동생이 아닌 오빠가 해가 되기도 하고 오빠가 밤을 무서워하는 동생을 대신해 달이 되기도 합니다.
전래 동화집 원문을 검색할 수 있는 코너
한글 전래 동화, 더불어 사는 삶 이야기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전래 동화 속 옛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전시 3부는 옛이야기를 통해 옛사람들이 생각했던 삶의 지혜를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전래 동화를 읽는 어린이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우면서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가 아닌 '부모님께 효도하면 복을 받는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마라'가 아닌 '남의 것을 탐내면 벌을 받는다'와 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일들을 스스로 깨우치게 됩니다.
다채로운 시각 효과와 음향 효과가 옛이야기를 더욱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체험 학습현장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 역시 동심으로 돌아가 옛이야기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옛이야기 속에 푹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시 3부의 전체적인 경관 모습
철없던 어린 시절에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한 번, 내 아이를 앞에 두고 또 한 번. 전래 동화는 인생을 사는 동안 두 번은 마주하게 되는 책이지만 '아주 먼 옛날' 이야기인 양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한글 전래 동화의 100주년을 소개한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전래 동화의 소중한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글 전래 동화 100년,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기획특별전은 내년 2월 18일까지 전시됩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연중무휴이며 이용 시간은 평일 오후 6시까지, 토요일 9시까지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9시까지 연장되어 좀 더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있어서 즐거운 일상, 곱씹을수록 매력 있는 한글 전래 동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