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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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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Nov 15. 2021

닳고 닳은 오래된 마음


십 일월의 어느 저녁,

나는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역 근처에 있는 타로가게를 충동적으로 찾아간다.


"남자랑 인연이 없네~"

내 손금을 척 보더니 술사가 말한다.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는거 인정하죠? 그러면 인간관계가 힘들어~"

내 생년월시를 묻더니 술사가 갑자기 야단을 친다.


"마음 건강이나 챙겨요. 올해는 그저 지나가게 두어야 해"

내가 선택한 타로 카드를 모두 읽고 나서 술사가 결론을 내린다.


"당신이 끼가 많아서 그래. 나 같음 혼자 살겠네"

술사가 웃으면서 욕인지 칭찬인지를 한다.

나는 그냥 립서비스로 이해하고 마주 웃는다.


더 들을 말이 없는 것 같아서 카드를 내밀었더니 술사가 현금만 받겠다고 한다.

이 근방에서 자기처럼 타로도 사주도 잘 보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이만원을 계좌이체하면서 다시 묻는다.

"내년에는 제가 상관운인데 연애운이 어떤가요?"

"어린 남자 만나겠지 뭐... 그러다가 다음 해에 충으로 깨지겠지 뭐...."

술사는 자꾸만 웃는다. 탁자 위 어지럽게 놓여진 타로카드가 웃는다.

다시 술사를 본다. 조명 때문인지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붉으스레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요즘에는 일곱시만 되어도 한밤인 것처럼 어둡다.


겨울 저녁처럼 늙은 술사여

닳고 닳은 오래된 마음이여




2021.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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