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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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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Jan 13. 2022

엄마의 퇴원

" 나쁜년, 엄마를 병원에 버린거지?"

1

'엄마가 언제 퇴원할까' 병원으로부터 가까운 시일 내에 퇴원할 수 있으니 준비를 하라는 전화를 받은 이후 줄곧 떠올랐던 생각이다. 달력을 한참 노려보다가... 어쩌면 이 날이겠구나, 싶어 숫자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날이 꼭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쁘고 감사했다. 이틀 후에 담당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짐작한 날이 퇴원일이었다. 당일 보호자가 지참해야하는 준비물, 격리병동 출입 방법, 진료비 총액에 대한 안내 등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어쩐지 떨리는 마음으로 경청하면서, 기억해야 할 사항을 달력의 여백에 적어내려 갔다. 늘 휑하고 쓸쓸하게 보였던 12월의 달력이 나의 글씨로 인해 어지럽게 메워졌다.


2

격리병동의 흰 복도에서 다시 만난 엄마는 애벌레처럼 늙어있었다.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초췌하고 쭈꿀쭈꿀했다. 예전보다 훨씬 작아진 체구로 휠체어에 앉아있는 엄마를 보니 그저 말문이 막혔다. 눈빛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늘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렬했던 빛은 어디로 간 걸까. 엄마는 말을 하는 것도 힘이 드는지 손만 내저었다. '빨리 집에 가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동차 안에서도 엄마는 내내 말이 없었다. 집 앞 주차장에서 우리는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엄마는 어떻게든 제 힘으로 걸어가고자 다리에 힘을 줬지만, 일어서는 것도 무리였다. 자꾸만 풀썩 주저앉는 모습을 보다 못해 동생이 엄마 앞에 구부려 앉아 등을 내밀었다. 엄마는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겉보기와 다르게 엄마의 고집만은 그대로였다. 동생의 강권에 못 이겨 등에 업히기는 했지만 엄마는 계속 '무거울 텐데', '네가 힘들 텐데', 힘 없이 잔소리를 중얼거렸다.


3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산소발생기의 줄을 엄마의 코에 꽂았다. 엄마는 앞으로 몇 달동안은 산소발생기에 의지해서 자가호흡을 해야한다. 엄마를 두고 나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엄마는 일반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밥이나 국을 먹기에는 무리이다. 아침에 시장에서 미리 사온 전복죽을 데워 작은 상을 차렸다. 겨울이면 엄마가 꼭 찾는 동치미도 곁들였다. 개다리소반을 들고 다시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빨갛게 울고 있었다. 좀처럼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엄마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 처량하게 울먹였다. "나쁜 년, 엄마를 병원에 버리고 갔어... 엄마가 죽어 없어져도 모를 거지..." 나는 소반을 내려놓고 엄마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엄마는 그동안 본인에게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응급차를 탄 것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은 (당연히) 전혀 없고, 다만 일반병실에서의 감옥 같은 생활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낮이고 밤이고 똑같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고, 휴대폰을 사용할 수도 없고, 간호사에게 물어보면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엄마, 엄마는 죽다가 살아난 거야. 코로나 폐렴으로 그렇게 아팠던 거야. 고생은 다 끝났어. 이제는 괜찮을 거야." 물론 이것은 바람에 불과했다. 엄마는 이제 손상된 폐를 가지고 또다른 지병들과 싸우면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애써 아무렇지 않게 엄마를 달래며 인슐린 주사를 놓기 위해 주사 바늘을 뜯었다. 엄마의 배에는 수십 번 주사 바늘이 거쳐간 흔적이 군데군데 시퍼런 멍으로 남아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육신 못지않게 엄마의 마음도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대체 누구를 탓해야 할까. 엄마가 입원한 날부터 늘 돌아와달라고 기도했는데, 이렇게 돌아와서 다시 만난 엄마는 어쩐지 낯설고 아프다.


4

자정이 넘은 깊은 밤, 엄마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가족들을 긴장시켰다."나 집에 돌아갈래. 나 퇴원시켜줘. 나 하나도 안 아픈데..." 엄마는 나를 눈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의 흰 얼굴은 더욱 창백해서 숫제 불길한 빛마저 감돌았다. 악몽을 꾸었다기 보다는 현실과 과거의 기억이 한데 뒤엉켜 구분되지 않는 듯 했다. 엄마를 진정시키고 다시 잠자리에 든 모습을 확인하고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다시 잠을 자야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구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구나. 엄마가 겪었을 고통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회복과 재생의 시간이 간절히 필요하다.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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